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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Jul 13. 2020

나의 가까운 세상을 흐려버린 노안에 대처하는 법

돋보기보다 더 필요한 것

눈이 안 보여!


가느다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싶은 호기심에 일부러 뿌연 시야를 세뇌시켜 안경사의 판단력을 흐려본 적 있다. 굳이 안경을 쓰겠다는 손님을 상대로 굳이 팔지 않겠다고 마다할 장사치도 없다.


처음엔 어지러워도 바닥을 보며 걷다 보면 곧 적응할 거예요


시골 안경사의 충고를 듣고 버스정류장까지 곧바로 걸어보았다. 걸을수록 휘청거렸다. 눈은 높은 안압에 찌그러지는 듯했고, 걷는 두 발치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비싸게 맞춘 안경은 룸메이트가 어느 날 잠시 쓰더니 아예 십 년을 끼고 다녔다. 그 사이 징병검사를 받으며  내 눈의 시력도 다시 확인했다.


왼쪽 2.0, 오른쪽 2.0.




문서작업이 많아 레퍼런스가 여러 개라 하는 수없이 게이밍 와이드 모니터를 샀다. 한글, 파워포인트, pdf. 이렇게 3개를 띄우고도 탐색 창까지 올려도 넉넉하다.


사실은 예전이라면 스마트폰과 프린트한 문서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타이핑 치면서 문서를 만들던 시절이 사라졌다. 왼손에 쥔 스마트폰과 프린트한 문서의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서너 달?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피곤이 사라져도 뿌연 눈앞 세상은 정리되지 않았다.


노안인가 보구나. 나도 노안이 오는구나.


나는 늙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나는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라고 우겼는데. 정말 변했다. 사람의 오감 중에 늙어서 먼저 느끼는 노화가 눈인가 보다.


새삼 눈에 장애가 있는 분들의 답답함이 얼마나 큰 고통일지 쓰라리게 느꼈다.




아내가 성화다. 더 나빠지기 전에 노안 안경을 맞추라고 난리다. 고등학교 기숙사 살던 시절, 비싸게 가느다란 금속테 안경을 억지로 맞췄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실소했다.


두어 주 실랑이하다가 나 자신이 불편해 집 앞 안경가게를 찾았다. 디옵터가 1.75라나? 노안이 어느 정도 지났단다. 교정해보니 잃어버린 가까운 세상이 다시 보였다. 그리고 아내가 시원하게 스마트폰으로 안경값을 치렀다.


그렇게 나는 노안용 돋보기안경을 맞췄다. 반테두리 뿔테 안경이다.




사람의 뇌기능은 가연성이 뛰어나다. 어느 한 기능을 잃으면 뇌의 다른 부위에서 잃어버린 기능을 대체한다. 눈이 나빠지자 눈의 감각을 대체할 청각이 발달하고 눈의 감성이 소리에서 예민해지는 듯하다.


조그만 떨림에도 긴장과 공포가 느껴지고, 작은 청아함에도 세상 최고의 자존감을 느끼게 됐다. 호르몬의 이상 반응일지, 청각의 고도화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감각의 감정이 달라졌다. 멋들어지게 노련한 모습으로 달려졌다.




올여름 추천하는 골프웨어를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았다. 동영상 속 색상은 감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데, 자막이 시원찮다. 절반의 영상이 넘어갈 때 즈음.


눈 앞의 유튜브 동영상 위로 눈부심으로 가득 찬 양잔디의 물방울이 시야를 거둬들인다. 동영상 출연자의 목소리는 배경음으로 희석되고, 그녀가 말하는 설명이 그림으로 펼쳐진다.


눈보다 더하게 선명한 소리가 뇌 속에 커다란 그림을 3차원 OLED로 낱낱이 토해낸다. 필드 위 요란한 색상으로 알록이를 만드는 아줌마 플레이어와 블랙 앤 화이트 톤의 멋들어진 플레이어들이 18홀의 모든 홀을 채운다.


돋보기가 필요한 내 눈에게, 더 이상의 망막 위 역상이 의미 없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동영상 속 그녀의 골프 웨어 설명에 두 귀를 녹이며, 두 눈을 지긋히 감아본다.


https://youtu.be/-S3I7NEtr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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