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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13. 2019

20년 강남 엄마로 살다 문화 사업에 푹 빠진 그녀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살짝 미쳐야 인생이 즐겁지 않을까요?

사십 대 중반 우아한 여성의 입에서 나오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 이 여성 CEO는, 20여 년 전 사회 초년 시절. 모델라인이라는 회사에서 패션쇼 기획에 참여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학시절 살짝 미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생면부지의 대전에서 신혼을 꾸리던 때였다. 신랑이 공부하던 카이스트의 금요문화행사를 염두에 두고 감히 요란한 패션쇼를 기획할 꿈을 꿨다고 한다.


남편을 따라 카이스트 기혼자 아파트에 살면서, 금요문화행사가 우리 부부의 유일한 사치였어요. 그런데 클래식 연주회만 매주 열리는 데 카이스트 학생들도 너무 지루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죠!


남편이 카이스트 학생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인연고리를 바탕으로 카이스트 행정관을 찾아가 자신이 만든 기획안을 들이 내밀었다. 패션쇼가 열리면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도 제공하고,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도 생소한 관객과 마켓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했다. 이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망설이던 학교 담당자를 몇 번이고 찾아가 설득해 마침내 당시 카이스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끌벅적한 패션쇼가 열렸다.


신선한 시각으로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거야, 라고 믿게 됐어요.


이 여성은 이후 학위를 받고 벤처기업을 일군 남편을 따라 전업 주부로 강남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지나 그때 대전에서 낳은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엄마 생활 20년 뒤에 여성 CEO로 이름을 새기고 있다. 이미지 컨설팅 기업과 금요문화살롱으로 강남 바닥에 또 다른  그녀의 수식어를 만들었다. 주식회사 바이허 대표이사라는 수식어가 20년 경력 단절녀인 팽정은 대표에게 붙은 최근의 수식어다.


워낙 밤낮없이 회사 일에 빠졌던 남편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성장했고, 그러는 사이에 남편은 중국이나 일본이나 해외는 물론이고 주말 부부를 해가며 사업에만 미쳐갔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한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야 했던 그녀는 동네 아주머니에 어울리는 '정은씨~', 'OO이 엄마'로 불렸다. 젊어서도 사회 생활을 잘해나가는 남편을 보면서 가끔은 부러움과 시샘으로 나도 그런 생활을 해 봤으면 하는 꿈을 꾼 적도 있었지만, 이내 그런 맘을 눌러 앉혔다.


내가 벌어봐야 신랑 술값도 못 벌 텐데.
집안일 잘하는 게 내가 돈 버는 거지.


정은 씨는, 아니 OO이 엄마는, 이렇게 20년을 보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쾌활하고 활동적인 그녀가 조용히 20년을 시간만 때우며 보냈을 리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사회인들과 교류하고 문화생활을 즐겨왔다고 한다.


갤러리 모임을 통해서 미술 공부를 하고 덤으로 사회인들을 두루 사귀는 행운을 지금까지 십년 이상 누려 오고 있다고 감사해 한다. 게다가 클래식 음악 공부와 모임, 독서 모임, 와인 모임에도 열심이었고, 골프 모음에도 빠지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지만 세상의 주요 흐름을 주도하는 여성들과도 인맥을 발굴해 나갔다. 그때는 뭘 하겠다는 생각이나, 어떤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좋아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이 여성을 단 5분만 보고 있더라도 그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다.


아이가 너무 커버린 후,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다가 때마침 이미지 컨설팅을 공부했다. 단순 취미보다 커리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을 주요 컨설팅으로 정한 뒤 남편의 조언에 따라 주식회사부터 덜컥 만들어 버렸다.


"뭐든 시작해야 일이 오는 거야"라는 남편의 말에 시작했지만, 기장을 맡긴 세무사조차 "벌이도 없는데 주식회사는 너무 오버인 것 같다" 라고 개인사업자로 바꾸도록 자문했다. 하지만 발랄한 팽정은 대표는 유쾌히 받아 넘겼다.

"돈벌이 되게 만들면 되잖아요!' 대책 없는 믿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벌써 2년이 지났다.


주요 고객층인 20, 30대분들보다 제가 음식, 의류, 취미, TPO 측면에서 저는 많은 경험을 했고 즐겨왔거든요.

많이 먹어본 고기를 맛있는 부위만 골라 제대로 드시고 싶은 분들에게 맛있게 드린다, 라고 제 일을 설명하면 될까요?


지금은 아이의 예전 학원 설명회에서 상담했던 강사분들까지 고객이 될 정도로 그녀의 수완과 컨설팅 능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요즘에는 아예 전담 쇼퍼로서도 활동하고 있고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강연도 나간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활동은 '금요문화살롱'이다. 일명 '바이허 라운지'에서 매달 셋째 주 금요일마다 문화살롱을 열고, 20명 내외의 사회 각층의 인물들과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올해 4월부터 시작했는데 4월에는 아트북 컬렉팅에 대해 우탁 Taschen 한국 디렉터, 5월에는 향기의 미술관 노인호 대표, 6월에는 미술과 와인 주제로 유명 미술사가인 이연식 작가, 7월에는 현대사진의 흐름과 사진 읽는 법에 대해 책가도로 유명한 임수식 작가, 8월에는 재즈의 스탠다드와 감상법을 주제로 김광현 월간 재즈피플 편집장을 모시고 20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 문화살롱을 열었다.


지난달에는 화가의 식탁이라는 주제로 박재연 문화인류학 박사가 미술과 그림 속 식탁에 얽힌 재미난 예술사를 함께 했다. 10월에는 무슨 주제냐고 묻기도 전에 팽 대표가 먼저 신나 말했다. "이미 20명 이상이 부킹을 했는데 워낙 참여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서 오버부킹 하기로 했다"라고 자랑한다. 요즘 미술과 패션 분야에서 신성으로 떠오르는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를 모시고 '옷장 속 인문학' 코너로 문화살롱을 연다고 한다.


문화살롱은 사실 돈이 남기는커녕 협찬 없이는 운영이 어려워요.
하지만 문화살롱을 통해 강남 지역의 여성들이나 사회 각계층에서 활동하시는 남성분들이 조용한 소규모 살롱에서 와인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자체를 즐거워하세요.

그리고 제가 그 자리를 주최한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매월 문화살롱마다 강연이 끝나면 강연자와 관객이 바이허 라운지의 테이블에 모여 앉아 뱅 앤 울프슨 스피커가 들려 주는 음악을 들으며 새벽이 되도록 와인, 맥주, 전통주를 즐긴다고 한다. 이 모든 주류들은 팽 대표가 예전 20년간 다져온 인맥을 통해 협찬받은 것이다. 매 회 케이터링을 제공하는 친구도 보수 없이 20명 이상이 먹을 음식을 문화살롱마다 제공한다. 이 모두 팽정은 대표의 사람 좋아하는 진심이 빚은 호혜이다. 


남편은 제가 강연자를 섭외하고 문화살롱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참, 용감하다, 아니 무식해서 용감한건가?'
라고 말하지만 속으론 조금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강남 엄마로 살기 전 대학에서 배웠던 전공도 아니고, 꾸준히 사회생활을 통해 경험해 왔던 커리어도 아니지만, 아이를 키운 지난 20년이 결코 아이만을 위해 보낸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행이다 싶은 마음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팽정은 대표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경력 단절녀들에게 꼭 한마디 남기고 인터뷰를 끝내고 싶다고 한다.


경력이 단절된 게 아니라 잠시 다른 경력을 가지는 중이에요.
우리 모두 한번도 경력이 단절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력이 제 인생에 중요한 척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 모두 대박이 보이시나요?

저와 여러분에게 대박은 바로 우리 인생 2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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