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Oct 15. 2019

초콜릿 고디바는 관음증의 원조이다?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전]

'Peeping Tom'이라는 말은 관음증 환자를 부르는 속어다. 그런데 이 속어를 만든 원인 제공자가 고디바다. 아니 왜 초콜릿 회사가 무슨 이유로 관음증 환자를 만들었을까?


성도착증 환자나 사이코패스에게나 어울릴 법한 단어가 관음증 아닌가? 나만이 내 눈의 모든 상황을 통제한다는 판타지 속에서 성적 유희로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위태로운 감각이다.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말하면서 '관음증은 이성의 성기를 보고 성욕을 느끼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상적 수준을 넘는 성도착으로 가는 관음증은 범죄의 주요 통로로 정신적 메조히즘의 원인이 된다. 쉬운 말로 인생 파국으로 접어든다.


이렇게 관음증으로 인생을 말아먹은 원조를 기리며, Peeping Tom이라는 속어가 생겼다. 그래 Tom이 이번에도 사고를 쳤다. 그것도 두 눈이 멀어 버리고 재단사인 밥벌이도 못 하다 비참하게 저 세상으로 가고 만다. 그리고 후대에는 관음증 환자로 영원히 Tom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 가운데 단연 1등으로 꼽는 그림이다. 존 콜리어가 그린 고디바 부인이다. 관능과 섹시함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처음 그림을 본 순간 리비도가 무엇인지 프로이트 선생에게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이나 십 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게 과장한 고디바 부인의 몸매와 말안장으로 두른 붉은색 융탄자는 섹시함의 원천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나 혼자 만이 이 광경을 간직하고 싶다는 강렬한 도착 증세를 불러일으킨다.


미안하다. Tom, 네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야기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카운티로 거슬러 간다. 레오프릭 3세라는 영주가 코벤트리를 다스릴 때 그의 부인이 고디바였다. 지독하게 농노와 소작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였던 레오프릭 3세의 탐욕은 코벤트리 백성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심성 착한 고디바 부인이 어느 날 레오프릭 3세에게 하소연하며 간청했다. 과도한 세금 추징을 잠시 멈추고 선정을 베풀어 달라고 말이다. 레오프릭 3세는 초야권을 물론이고 세금과 공출을 가혹하게 하기로 유명했다. 가차 없이 군사를 동원해 목을 따거나 집을 불태워 공포의 폭군으로 두려움을 전파했다.


세금을 영원히 내리지 않으면, 발가벗고 시내를 돌아다닐 거예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영주는 고디바 부인이 몇 번이고 이 같은 협박을 거듭하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감히 고디바 부인이 그러진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시장을 알몸으로 다닐 수 있으면, 당장 세금 걷는 걸 멈춰주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여인인지, 아니면 어느 정의로운 책을 읽다 돈키호테식 망상에 빠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고디바 부인은 결국 여종 하나가 말을 끌게 하고 자신은 발가벗은 채 말에 올라 코벤트리 시내를 돌았다.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팔과 머리카락으로 온몸을 가린 채 나체로 시내를 돌았다.


비천한 백성들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아니면 철없는 부부싸움 정도, 고디바 부인에게 감동한 백성들은 암묵적 합의를 통해 일사불란한 행동을 한다. 아무도 길거리에 나오지 않고 집안의 창문도 모두 닫아 고디바 부인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내리고 문은 혹시라도 열리지 않도록 꽁꽁 잠갔다. 공동체를 위한 노블레스의 행동을 보여준 장면으로, 아직도 '고디버이즘'이라는 희생정신으로 숭고함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어느 세상에나 꼭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는 못 베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왜 그럴까? 이 대목에서 나올 사람이 Tom이다. 코벤트리 시내에서 재단사로 가게를 꾸리던 Tom은 영주 부인의 몸매가 보고 싶었다. 직업 정신의 발로에서 옷을 짓고 싶었다는 풍문도 있으나, 역시나 Peeing Tom의 리비도를 관음증에서 직업정신으로 희석시키려는 Tom 가문 사람들의 역사 왜곡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창문 너머 작은 촛불을 손에 들고 Tom은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고디바 부인의 실루엣을 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의 실루엣이 컬러 빛깔 나체로 그의 눈 앞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붉은 머릿결, 풍만한 가슴과 하얀 속살, 너무나 둥글어 인공적으로 붙여 놓은 것 같은 엉덩이, Tom은 최고의 마력으로 상승한 리비도 에너지를 느꼈다. 그리고 리비도 에너지는 주체하지 못하고 Tom의 몸 밖으로 발산되었고 Tom의 두 눈이 희생되었다. 영구 실명.


벨기에 초콜릿 제조사가 1926년 사명을 고디바로 지었다. 그녀의 숭고한 희생과 애민정신이 전세계인들에게 초콜릿 풍미로 연대하고 싶었던 창업자의 의사를 반영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고디바는 초콜릿 회사가 되었고, 반대로 초콜릿 고디바는 관음증의 원조로 오해받는 소동을 감수해야 했다.


아이 때문에 몇 번 드나들었던 고디바 매장을 들르면 이제는 상표 속 고디바 부인을 관음해 봐야겠다. 고디바 부인이 나를 흘낏 쳐다볼 때까지. 여러분도 같이 해 보자.

우리 모두 다 함께 Peeing Tom이 되는 도전을 해 보는 거다.


혼자 보면 도착증이지만 다 함께 보면 존경하는 거다.




작가의 이전글 20년 강남 엄마로 살다 문화 사업에 푹 빠진 그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