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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15. 2019

품위 있게 회사와 이별하기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똑똑똑", 합판 나무문의 빈 공간이 가벼운 탁 소리를 세 번 냈다. 오히려 '톡톡톡'에 더 가깝게 들린다. 보안 전자석의 전자기력을 상실시키는 탭 버튼을 눌렀다. 책상 위에 긴 세로 모양으로 'PUSH' 영문자가 실크스크린으로 새겨진 탭 버튼이다. 공장을 짓고 이사온지 4년이 지났다. 실크스크린을 감싼 아크릴 커버는 이미 수많은 스크래치로 글자를 흐릿하게 가린다.


이거 수리해 줘, 그리고 나도 네들처럼 오늘부터 그만둘래. 퇴사한다!



"사장님이 사표를 썼대, 이거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잡코리아에 이력서나 올려야겠다."

"직원들이 수군거리고 동요가 장난 아닙니다. 푹 쉬시고 복귀하시면 회식 준비하겠습니다.", 기획팀장이 전화로 복잡한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사장이 퇴사한다니? 다들 어떻게 생각하겠어, 라는 기획팀장의 날 선 비난이 뼈 속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난 확고하다.


나 다시는 그깟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나도 직장 생활에 상전을 모시며 부당한 과거의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한 적 있다. 내가 손실 본 인생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빼먹으려는 의도로 사장질을 하는게 아니다. 사장이라고 해서 직원들에게 깊은 충성심과 높은 능력을 기대해 본 적 없다. 이미 내가 나 스스로를 사장이라고 여기고 책임감이란 것에 부담을 가지기 시작한 때부터, 직원은 직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실제 기대 범위를 넘는 업무 능력을 기대하지 않았고, 사회에서 만난 제3자 이상으로 애정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나도 애정을 그 이상으로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장도 월요병이 있고, 출근 시간이 끔찍하다. 사장도 싫은 소리 하기 죽기보다 싫고, 하고 나면 뱉었던 그 단어들이 오히려 내 머릿속에 곰을 쓸어 좀을 판다. 사장이라서 행복해요, 라고 당찬 날이 1년 365일 가운데 며칠이나 있을까? 하루, 이틀, 삼일, 아마 직원들이 회사에 출근하고 싶었던 날자의 숫자보다 훨씬 적지 않을까 싶다. 사장도 회사 다니기 싫다. 직원들이 심심하면 내뱉는 "이깟 회사", 사장이라고 "저깟 회사"가 되는 게 아니다.


1. 회사에 비전이 없습니다. 제게 비전을 주세요.

그냥 솔직히 '그만둘 때 되었다'라고 쉽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비전이니 스스로도 이해 못하는 행간을 포함하는 것은 비겁하다. 사장이라고 비전이 항상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장이라고 해서 비전이 확고할 거라고 생각하면 더한 오산이다. 회사, 기업, 법인은 인격체이고 생명체이다. 그 속을 알 수 없다. 비전? 직원이나 사장이나 스스로가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이다. 회사와 사장이 심어주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다. 그냥 싫어졌다고 말하자. 용감하게 퇴사하라.


2.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병간호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직하겠습니다.

그냥 당당히 사표 쓰고 나가면 될 텐데, 왜 부모를 팔까? 이해되지 않는다. 남들이 부모를 언급했다면 가만히 있었을까? 왜 부모를 당장 내일이면 저 세상으로 갈 사람으로 포장할까? 난 직원들 가운데 금수저나 은수저를 본 적이 없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점은, 왜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직원들이 부모님이 아프시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지방으로 내려가 병간호를 한다고 할까? 오히려 병원비와 요양비 마련을 위해 더 돈벌이에 신경써야하는 것 아닌가? 그건 영화에서만 나오는 스테레오타입인가? 부모님께서는 사표 쓰고 병실에 드러누워 있는 자식의 모습에 반색할까?


변명을 섞어 사표를 낸다 해서, 고마워할 상사나 사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자. 그냥 쿨 하게 다른 직장에 다니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고 사표를 제출하라. 아마도 백의 구십구 명의 사장들이 깨끗이 포기하고 잘 떠나라 놓아줄 것이다. 


설마 자기를 놓아주지 않을까 봐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충분히 그런 착각을 하고도 남을 거라고 봐.


3. 이렇게까지 해서 이 회사를 다녀야 하나?

그렇게까지 해서 회사를 다닐 필요가 없다. 인사 잘하는 직원? 항상 웃는 직원? 회식마다 옆자리에서 술잔 따르는 직원? 회사 분위기 잘 띄우는 직원? 사장이 정말 이런 직원들을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고 여긴 것 같은가? 천만에 100% 확실한 당신의 오판이다. 회사 구성원이기 때문에 연대감을 위해 칭찬하는 척 웃어주는 척 유화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가식이다. 정말 그런 직원들, 제 정신의 사장이라면 끔찍이 싫다. 사장만 싫어할까? 소대장도 싫어하고, 대대장도 싫어하고 동호회 회장님도 싫어한다. 여러분들만 싫은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럼 직원들의 업무 능력으로 돌려볼까? 밤새고 당직하고 외근 가고 출장 가고 연애도 못하는 여러분의 삶이 회사로 인한 것처럼 원망스럽다면, 그깟 회사 다니지 말아야 한다. 회사도 사장도 동의할 것이다. 여러분이 그 고생하며 회사 업무를 감당하는 동안, 회사 전기비와 기회비용과 관리 노력이 전혀 없을 거라고 여긴다면 사장들이 섭섭해할 것이다. 사장들은 정해진 업무 시간에 일 끝내고 신경 쓰이게 하지 않는 직원이 좋다. 그러니 '이깟 회사를 위해 이렇게까지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다. 회사도 그렇게까지 비효율적이고 무규칙적인 인력 관리에는 진절머리 나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퇴사하자.



4. 연봉을 더 올려주세요. 저는 연봉 수준에서만 일할 겁니다.

연봉이 회사를 입사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면 입사를 하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해를 지나도 연봉이 사표를 서랍에 넣을 만큼 인상되지 않았다면 과감히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면 될 텐데. 왜 신의 경지에 들어선 미스 김, 이라도 되는 양 연봉받는 만큼만 일하겠다, 라고 으름장을 놓을까? 사장 앞에서 용감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동료 상사들에게 호기로 토해내는 저급한 엄포에 불과하다.


연봉 수준에 맞추어 일할 능력이라도 된다면, 그 말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기 이전에 이미 사장이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상상할 수 없을 지경으로 연봉을 올려 두고 말이다. 조용히 회사를 나가기 싫다면, 대판 고함이라도지르고 사직서를 던져라. 그게 더 호기롭다. 당당하게 퇴사하자!


 



이 꼴 저 꼴에 사람들, 당연히 직원들이지, 에게 지치면 이깟 사장질 뭐 하러 하나, 싶다. 부도 맞고 인생 종 치더라도 더 이상 더러운 꼴 보기 싫고 더 이상 직원들 눈치 보며 살기 싫다, 라는 생각이 하루 3번씩 1년 1,095번 넘게 여러분의 사장을 괴롭힌다.


더 큰 회사로 키워 더 뛰어난 직원들을 뽑아 더 안정되게 성장하는 회사를 사장은 꿈꾼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활활 거칠게 불타고 싶다. 지금의 여러 직원들 가운데 자의든 타의든 긴 시간 이후 함께 하는 직원들만 중요할 뿐, 어차피 이름도 기억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직원은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 더 많이 편한 회사, 더 많은 잡생각을 할 수 있는 회사,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언제든지 떠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회사와 함께 크고 싶다느니, 라는 괴상망측한 발상은 회식 술자리에서 이미 인사불성된 사장을 위해 가요반주의 추임새 정도로만 사용하면 충분하다.


사장이나 직원이나 자신과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삼가하자. 서로를 힘들게 옭아맨다. 서로 힘들 뿐이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다, 서로 쿨하게 헤어지자. 서로 그 이상의 망상은 버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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