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두 번째 라오스 이야기
아기 띠보다 무거운 내 여행의 무게 그리고 우리의 무게
휴가를 가는 데는 나의 돈과 시간 말고도 필요한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휴가신청서. 우리 회사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려면 구체적인 사유를 밝혀야 한다. 내 휴가를 내가 쓴다는데 사유까지 써야 하는 게 참 이해는 안 되지만 친절하게 작성해서 제출했다. 여행가니까, 후훗. 휴가만 갈 수 있다면 A4 용지 몇 장도 쓸 수 있다. 지금의 변화속도라면, 몇 년 후에는 사유를 쓰는 칸도 사라지고 묻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회사 동네에 내가 라오스 간다고 소문이 나니, 육아 휴직에 들어가는 친한 동료가 내게 면세점에서 아기 띠를 구매해 주기를 부탁했다. 면세 쇼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뭣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무료 배송대행 정도로 여겼다. 이래서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 거다. 정확한 크기도 모른 채, 그저 가벼운 생각으로 ‘작으면 하겠다’는 가벼운 말을 뱉었다. 그래서 나는 24인치 캐리어의 반이 넘는 크기의 아기 띠를 8일 동안 가지고 다녔다.
동료의 부탁을 거절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거절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거절하는 것이 불편해서 말을 하지 않은 거다. 솔직히 거절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No’라는 말이 무거운 도끼 같아서 쉽게 꺼내 들어 올리지 못한다. 관계가 끊어질까 봐.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친구들은 대용량의 화장품, 보디오일 등 나와는 또 달랐지만 그런 부탁으로 여행이 시작부터 끝까지 힘들었던 점은 같았다.
아기 띠의 무게보다 날 더 힘들게 한 건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에서 친구들이 내 짐을 나눠서 캐리어에 넣어주고 중간에 이동할 때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지 못한 거절이 친구들에게 짐이 된 것을 느낀 것이다. 아기 띠 사건을 통해서, 나로 인해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라는 말 대신 “그 동료가 너를 싫어하는 거 아니야?”라고 웃으며 아무 일이 아닌 척 넘어가 줬지만 나는 혼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상상하지 못한 크기의 아기 띠를 본 순간에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면세점 매장 앞에 서서 카톡과 전화로 “이거 너무 커. 이걸 어떻게 8일간 들고 다녀!”라며 투덜거렸지만,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동료를 탓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내가 더 먼저 거절이라는 결단을 내렸다면 동료도, 나도, 내 친구들도 덜 마음이 상했을 텐데. 나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은 채 라오스행 비행기를 탔다. 짐을 놓고 가볍게 비우고 가야 할 마음이 벌써 채워져서 여행이 걱정스러웠다.
여행의 출발지에서 또는 가기 전에 우리는 면세 쇼핑을 할 수 있는데, 그게 주된 목적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나처럼 여행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쉬려고 간 여행에서 웨이트 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출발은 손과 마음이 모두 가볍게!
“밑져야 본전으로 하는 부탁에 내 본전을 잃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