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세 번째 라오스 이야기
대한민국(인천) 출발, 라오스(비엔티안) 도착, 17시 10분 비행기. 우리나라 시간보다 2시간 늦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새벽에 비행기 밖으로 나오는 순간 습하고 더운 열기가 내 얼굴과 코로 들어오자 정말 내가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왔음을 실감했다. 항공사에서 생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공항 편의점에서 보이는 대로 군것질거리를 산 다음 밴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식당에서 밥을 먹기엔 방비엥 버스 픽업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챙겨간 김치 사발면을 간단히 먹었다.
여행자 또는 핸드폰 집착자에게 안정제(데이터)가 시급해서, 여행기간 동안 쓸 유심 칩을 사러 갔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직원이 추천한 동네의 작은 가게였다. 가게에 있던 주인 할아버지, 아르바이트생, 손자까지 나와서내가 산 유심 칩 세팅을 도와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칩을 세팅하고 우리보다 나중에 온 손님과 대화한다. 그들은 그렇게 평온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란 답답함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나는 여유롭게 쉬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조급한 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청춘이라 즐기러 라오스에 온 건데, 알고 보니 마음은 청춘이 아니었던 거다.
칩 교체가 끝나고 건너편에 있는 환전소로 가서 달러를 낍(라오스 화폐 단위)으로 바꿨다. 역시나 환전소에서도 직원들은 다른 직원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돈을 세었다. 웃으며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업무시간에 사담한다고 투덜거리거나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상황이다. 하지만 라오스는 이런 모습이 일상적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형식적으로 웃는 게 아니라 진짜 즐거운 표정이었고, 삶이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라오스는 순수한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맑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내가 만난 라오스 사람들의 얼굴은, 웃음이 남은 눈가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미간 사이에 세로줄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남는다’는 말처럼 그들의 얼굴은 ‘인생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얼굴은 참 보기 싫었다. 예쁘지 않은 것을 넘어서 미간에 내 천(川) 자가 짙게 있어서. 라오스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내가 가진 다섯 살 어린아이의 마음 같은 천진난만함이 다시 스멀스멀 나왔다.
비엔티엔 거리에서 나는 마음이 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혼자 불편해하고 있었다. 여행 초반에 여행지에서 숨 고르기를 하지 않으면 여행 내내 체할 수 있다. 회사에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자주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일할 때 조급하지도 인상을 쓰지도 않았다. 나는 몸은 여행을 왔지만, 마음은 아직 한국에 남아서 아직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스읍, 하’를 몇 번 하니, 라오스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이제 라오스의 진가가 햇빛처럼 쨍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과 몸이 같은 속도로 함께 도착하는 게 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