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네 번째 라오스 이야기
라오스 날씨는 5월~9월까지는 우기이고 10월~4월까지는 건기라 많은 사람이 1월~2월에 여행을 간다. 우리는 너무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를 만날 수 있는 1월 중순에 라오스로 떠났다.
사원이 있는 비엔티안을 구경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액티비티의 천국인 방비엥으로 바로 이동했다. 국내선이 없어서 탄 방비엥 가는 45인승 버스는 오래된(폐차해도 될 것 같은) 우리나라 관광버스였고 이미 많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탄 상태였다. 자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센 언니들이 앉는다던 버스의 맨 뒷좌석에 네 명이 앉았다.
가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려서 중간에 두 번 휴게소 같은 곳에 멈췄는데, 라오스는 유럽처럼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천 낍(140원 정도)을 내고 들어간 화장실에는 전통식 변기가 나에게 인사해서 살짝 놀랐다. 한국에서도 가끔 만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라오스 전통식 변기는 물을 부어서 내려 보내는 수동시스템이라서 괜찮지 않았다. 사용법을 잘 몰라서 여러 번 시도 끝에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런 불편 때문에 화장실 가는 걸 참고 싶었지만 길 중간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응해야만 했다. 그래도 호텔은 양변기로 되어 있어서 참 편했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고 강원도 대관령 도로처럼 꼬불꼬불해서 멀미 약을 먹었더니 며칠 못 잔 사람처럼 숙면했다. 5시간이 흘렀을까? 하고 뜬 눈에는 길 중간이었다. 그때부터 숙소까지 가는 길, 음식점 등을 검색하며 공부도 하고 라오스의 산과 길, 나무, 집의 모습도 충분히 감상하다 보니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열심히 즐겨서 지친 얼굴로 비엔티안을 가려는 사람들이었다. 원래는 정류장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숙소를 걸어서 가기로 했지만, 정류장에 내렸을 때 늦여름 같은 라오스의 오후는 생각보다 뜨거워서 기가 빨렸다. 그래서 라오스의 대표적 교통수단인 툭툭을 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1월에 30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날씨는 남아있던 서울의 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묵은 루앙프라방 숙소는 시내와 거리가 좀 있어서 움직일 때는 대체로 다리보단 바퀴에 의존했다. 툭툭을 이용하는 것은 여행을 더 즐길 수 있도록 체력을 아낄 수 있는 선택이었다. 변명이 아니다(궁서체). 생각해 보라, 매일 회사에 앉아서 일하던 직장인이 갑자기 하루에 12시간 이상 움직이는데 체력이 뒷받침될 리가 없다. 마음은 6박 8일 동안 잠을 안 자면서 놀고 싶지만, 현실성이 0이다. 그렇게 하다간 쓰러져서 한국 아니면 이승에 못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에너지를 노는 것에 쓰고, 체력을 아끼기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을 경우에는 돈을 썼다.
나는 20대 때 시간이나 에너지보다 비용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했기에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편한 택시보다 번거로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땐 돈은 없고 시간이 여유로웠으니. 여행에서 내가 가진 시간이 가장 가치 있다. 그래서 여행의 순간을 더 온전하게 느끼기 위해서 돈을 더 내고 택시를 타도 몇 십 배는 남는 장사라 생각한다.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는 아직도 대중교통이 끊기지 않고서는 택시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서 시간의 가치는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그렇지는 않다.
이상하게 아직도 치킨 값은 안 아까운데 택시비는 아깝게 여겨진다. 역시 사람마다 쓰는 돈의 총액은 비슷하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용처는 다르다. 친구는 택시는 잘 타면서도 비싼 옷을 사는 걸 아까워한다. 사람마다 소중한 물건이 다 다르니, 내 생각과 다르다고 사치로 여기면 안 된다. 사치라는 말을 하는 순간 내 치킨이 공격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택시비는 누군가에겐 치킨 값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갖는 공통점은 돈이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아껴야 할 것은 시간이니 낭비해서는 안 된다. 특히, 나처럼 저질 체력인 사람은 에너지도 아낄 수 있으면 돈으로 사야한다. 그건 여행뿐만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요한 체력과 실제 체력의 부조화를 조화롭게 하려고 돈을 툭툭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