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다섯 번째 라오스 이야기

by beingwriter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자본주의 시대의 명언은 삶을 살수록 너무 선명하게 박혀서 가슴이 따끔할 때가 많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기분이 들어서 슬프지만 그게 사실이라 부정할 것도 없다. 돈의 정직함을 잘 알기에 2배 이상의 돈을 내고 호텔을 예약했다, 편안하게 쉬기 위해. 그리고 방비엥에서 우리의 집이 되어준 호텔은 ‘뷰 멋집’이었다. 거기에 수영장이 따로 있어서 수영하면서 경치를 바로 구경할 수 있었다. 참, 가격 값어치 하는 곳이다. 이런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서 여행 전에 합숙까지 하며 검색을 했다. 솔직히 검색한 시간보다 먹고 논 시간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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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호텔에 도착하자, 작은 도마뱀이 우릴 가장 먼저 반겨 줬다. 짐을 간단하게 풀고 수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운 오후의 날씨가 우리를 자연스럽게 시원한 수영장으로 이끌었다. 발을 넣는 순간 심장이 덜덜덜 떨릴 정도로 차가움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런데 5분 정도 됐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지근한 딱 적당한 온도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눈앞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비엥에 오기 전까지는 여행에 대한 기대나 즐거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처음으로 가는 자유 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혹시 모를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한구석이 계속 예민한 상태였다. 저 깊숙이 있던 불안은 수영장에 들어가면서 존재감을 잃었다. 내 몸이 차가움에 익숙해져서 햇살을 받으면 오히려 따뜻해졌다. ‘내가 추워서 몸을 떨었던가?’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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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사서 걱정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선택이나 행동을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고민만 하다가 지쳐서 포기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지치는 일이 늘어나면서 깨달은 것은 삶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 고민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결국 남는 게 없었다. 뭐라도 하면 좋든, 싫든 결과가 나오는데 이건 뭐 그냥 중간에 포기해서 끝을 알지도 못하는 꼴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으면서 겁도 많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굳이 편하게 쉬는 자신을 괴롭히면 안 된다. 하고 싶은 게 없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또한 나를 위해 소중한 노력이다.


여행에서 친구들과 틀어질지, 더 돈독해질지 같이 가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꽃보다 청춘’ 에서 ‘해빙칠’ 이 갔다고 한 블루라군과 제일 좋았다고 평가한 꽝시폭포도 가고 그들이 타지 않은 열기구 타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내가 또 언제 라오스에 올지 모른다는 핑계로 하고 싶은 건 다 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 것처럼 하니 후회가 적었다.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고 후회만 하는 게 싫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해보니 이젠 낯설음의 두려움에 오히려 익숙해져서 일단 뭐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시도한다.


용기가 문제가 아니라 돈 걱정이나 주변 사람들 때문에 생각이 많아서 주저하고 결단을 내리기 힘들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그때는 내가 하고 싶어도 못 할 수 있어’라며 나를 설득한다. 주변은 나에 대해 별 생각이 없고 돈은 그때도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낯설음은 나의 의지를 깃털의 무게로 가볍게 굴복시키고 나를 나약한 겁쟁이로 만드니, 그럴 땐 일단 수영장에 발을 담가보자. 싫으면 나와도 되지만 잠시 그 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어색하지 않으니 잠깐의 순간만 버티면 된다.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영을 하고 있을 거다...



“익숙하지 않으면 항상 힘들다. 그렇기에 내 기억에 입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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