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아홉 번째 라오스 이야기
앎은 모름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예약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오전에 코끼리 동굴에서 튜빙을 하러 갔는데, 이날 우리의 가이드가 되어 준 사람은 두이(사진에서 노란 가방을 멘 친구)와 루이였다. 튜빙은 끈에 의존해 튜브를 타고 동굴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것이다. 소리의 울림이 가득한 여정이 끝나고 점심 식사 장소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 돌아가는 길에 옆을 보니 두이와 나만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갑자기 어떤 풀(찾아보니 미사모 또는 신경초였다) 하나를 가리키며 시범을 보였다. 잎이 쫙 펴져 있는데 두이가 손으로 만지니까 오므라들면서 축 처졌다. 내게도 해보라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만졌는데, 진짜 잎이 오므라들어서 “어메이징, 판타스틱!” 하며 리액션을 퍼부었다. 두이와 다음 일정과 라오스에 대한 느낌 등을 이야기하며 걷다가 벌집도 구경하고 지루할 틈 없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자상한 친구였다. 따로 연락처를 받거나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라오스 친구가 생겼다. 그렇게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도 잠시, 블루라군3을 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는 그 후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다.
라오스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블루라군은 우리나라의 계곡과 같은 곳으로, 자연 속에서 다이빙과 수영을 할 수 있는 랜드마크다. 블루라군은 블루라군1, 2(유토피아), 3(시크릿라군)으로 구분되는데, 백세심이 블루라군3이 사람도 적고 조용하다고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블루라군3을 가기로 했다.
1시간 정도 흩날리는 먼지를 얼굴에 맞으며 간 블루라군3은 상상하던 모습과 달랐다. 정글같이 자연 친화적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작은 수영장 같은 느낌에 물은 뿌옇고 사람들이 많아서 조용하지도 않았다. 블루라군3에서 유명한 뚝배기 라면과 꼬치로 일단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물에 들어갔다. 수영을 못 해 구명조끼를 입고 동동 떠다니며 산과 다이빙하는 사람을 구경했다. 조용한 숲 속을 상상해서 기대가 컸는데, 현실은 실망 그 자체였다. 같은 공간일지라도 그날의 주변 사람, 날씨, 상황, 나에 따라서 체감하는 느낌과 시각이 달라진다. 내가 간 날은 그저 그랬다.
블루라군3에 불만족하니, ‘꽃보다 청춘’에서 해빙칠이 두 번이나 갔던 블루라군1이 궁금해졌다. 너무 좋아서 두 번이나 간 블루라군1에 가보고 싶었다. 여행 중에 한 번씩 자유시간이 있었는데, 방비엥 자유시간에 블루라군1에 가자고 했다. 임순수와 백세심은 피곤하다며, 자유시간에 마사지를 받을 거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라오스에서 마사지는 1시간에 6~7만 낍 정도(8천 원~1만 원)라 진짜 저렴해서 많은 여행자가 1일 1마사지를 받는다. 나도 라오스에서 마사지를 두 번 받았는데 여행의 피로가 풀려서 더 열심히 놀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끼리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생들이 거절하니 너무 서운했다.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노!’라고 외치는 반응에 나는 더 권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무면허라 운전할 수 없는 동생(나)을 위해서 김 언니가 버기카를 운전해서 블루라군1로 같이 가기로 했다.
블루라군1은 주변 자연과 휴식공간 등이 아주 잘 꾸며지고 놀기 좋게 조성되어 있었다. 오히려 물이 더 맑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우리가 전세 낸 것처럼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블루라군1에서 누린 힐링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모습이었다. 거기에 물고기들이 내 다리를 같은 종족(아마도 참치?)으로 생각했는지, 옆에서 질척거렸다. 블루라군에 취한 것도 잠시였다. 함께 오지 않은 동생들이 떠올랐다. ‘이런 절경과 공간을 함께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서 영상을 찍어서 보냈지만, 시내 유명한 카페에서 빵을 먹으며 잘 쉬고 있다는 답장뿐이었다. 라오스는 1949년 6월까지 프랑스에게 지배를 받아서 빵이 다양하고 맛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 빵만큼은 아니었다. 동생들의 아쉬워하는 마음은 1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동생들은 같이하는 것보다 ‘개!취!존!중!(개인의 취향을 존중한다)’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난 좋은 것일수록 같이 즐기고 나누고 싶어서 친구들에게도 권유하는 편인데 계속 권유했다가는 꼰대가 될까 봐 말하지 못했다. 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여유롭게 쉬는 것을 원했다, 그게 혼자일지라도.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느끼고 깨달은 것은, 친한 사이일지라도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다면 그런 것을 여행에서도 서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라서 공감은 할 수 있지만,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동감할 수는 없다. 동생들과 같은 문화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끼리 같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면, 그 친구들은 ‘각자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할 테니까.
나에게 감동적인 블루라군1이 동생들에게는 그저 작은 수영장인 것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머리로는 완벽하게 알겠는데 내 맘은 계속 한구석이 손가락에 박힌 나무가시처럼 신경이 쓰인다. 라오스 여행에서 블루라군1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일 좋아서, 제일 서운해서. 몸은 블루라군1에서 숙소로 가는 바람과 햇볕에 말라 산뜻해지고 뽀송해졌지만 머릿속은 동생들에 대한 생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복잡해졌다. 함께 또는 각자 그리고 그 사이에 절충은 무엇인지 생각해봤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함께하는 추억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은 잘 안다. 그만큼 친구 사이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는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못하는 말, 다리가 있지만 갈 수 없는 말, 보이지 않지만, 상처를 낼 수 있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