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열 번째 라오스 이야기
당신의 버킷리스트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요?
내 버킷에는 하늘을 나는 날개도 하나 있었는데, 양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하나가 삭제되고 열기구가 추가되었다. 번지 점프는 혼자 뛰어내려야 하는데, 내가 스스로 앞으로 나갈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전문가가 함께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서 버킷에 넣지 않았다. 버킷리스트 속 풍선은 생각보다 빨리 미션클리어 하게 됐다. 라오스를 여행한 적 있는 김 언니가 방비엥에서 열기구를 안 탄 게 계속 생각이 난다고 해서 이번에 같이 타기로 했다.
처음 라오스로 출발할 때는 버킷리스트를 하나 완료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지, 열기구를 타는 나를 상상하거나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라오스의 산을 보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라오스의 산은 대부분 석회암 지대가 빗물에 녹아서 뾰족한 모양을 띠는데, 마치 긴 톱니가 여러 개 이어진 모습이었다. 그래서 산신령이 구름을 타고 다닐 것 같은 풍경에서 열기구를 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열기구에는 우리 네 명 말고도 프랑스인 세 명이 함께 탑승하였다. 나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대한 설렘과 ‘혹시 열기구가 고장 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1시간 동안 구름 가까이 가서 구석구석 돌아다닐 거란 기대로 가득했다. 그런데 열기구는 내 모든 생각과 달리 잠시 높게 올랐다가 거의 바로 내려와서 기린의 눈높이 수준에서 끝났다. 내가 많이 무겁나? 밥을 조금만 덜 먹을 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옆에서 바라보는 정도였다. 열기구를 운전하는 직원이 날씨, 바람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열기구를 타기 전에 미리 밑밥(안내)을 깔긴 했다. 글쎄…. 뭔가 방귀 뀌려다가 사람이 들어와서 급하게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직원이 바람이나 날씨를 조정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바로 옆에 있던 다른 열기구는 구름과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산신령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었는데, 속상한 마음에 구시렁거리며 ‘나중에 터키를 가면 또 타겠다’는 말만 읊조렸다. 이렇게 열기구의 미션은 찜찜한 클리어였다.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하면 할수록 더하고 싶은 게 생기고 삶이 다채로워진다. 가끔은 하지도 않거나 못 할 것을 버킷에 넣어둬서 속상하기도 하는데 한편으론 언제 할지 모를 막연한 기대감이나 다른 리스트에 대한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나중에 잊지 않고 하게 되면 분명 또 다른 게 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렇게 내 안의 열정이 계속 살아 나를 자극한다. 아마도 터키에서 열기구를 못 타면 스카이다이빙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빼도 빼도 마르지 않을 버킷리스트에 수십 개를 넣다 보면 그 중의 몇 개라도 하게 되고 그 기억과 느낌이 나를 다시 버킷에 무언가를 담게 만든다.
열기구 프로그램에 와인을 마시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는 구름까지 다녀온 열기구에 탄 사람들까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프랑스인들은 타지에서 동포를 만나서 웃음꽃이 피어 화기애애했는데, 갑자기 우리와 함께 탔던 프랑스인 한 명이 열기구를 운행한 직원에게 감사를 표하는 게 아닌가? 나는 짜증이 나서 이 공간을 빨리 떠나고 싶은데. 이들도 불만이 있는 눈치였고 많이 아쉬워하며 그들끼리 불어로 이야기하는 걸 육감적으로 느꼈는데, 젠틀하게 말을 하길래 놀랐다. 나는 뒤끝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좀 오래간다.
기분 좋은 기억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벗어나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고 싶었다. 여행이 중반을 넘으니, 한식이 엄청 땡겨서 이미 열기구 타러 가기 전부터 한식당을 가기로 했다. 직원에게 시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하니, 한 차로 픽업해서 왔기 때문에 다 같이 출발해야 하고 가고 싶으면 우리더러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게 아닌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레스토랑에 7시 저녁 예약을 했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서야 시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기분 좋게 버킷리스트 미션을 클리어 했을 수도 있으니까.
숙소로 돌아와서,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웃으며 직원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린다. 내가 인상 쓴다고 열기구가 더 올라갈 것도 아니고 달라질 것도 없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밖에는 못 했는지. 기분 나쁘다고 해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행동이나 말투로 표현하여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감정 섞이지 않은 말로 직접 말하는 것이 오히려 명확하고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행하는 건 쉽지 않다. 사실에 근거하여 의견을 차분하게 말하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든 도움이 되고 오해나 서운함이 생기지 않는다. 차라리 내일은 날씨가 좋을지, 다른 날보다 오늘은 무엇이 달랐는지 물어보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에잇, 나처럼 나중에 이불 킥 하지 않으려면 감정에 지배되면 안 된다.
“감정의 행동은 앞에 서선 후련하고 돌아서선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