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열두 번째 라오스 이야기
가장 빠른 건 시작이고 가장 늦은 건 후회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건 나.
방비엥의 야시장보다는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에 더 크고 다양한 제품(옷, 그릇, 조명, 커피, 그림, 가방 등)이 있어서 볼거리가 많다. 처음에는 여백이라곤 찾을 수 없는 캐리어 때문에 구경만 하려 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아이템을 보기 전과 후가 다른 것처럼, 나도 모르게 커피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관광지에서의 거품을 팽라이(‘비싸요’의 라오어) 앵무새가 되어 쪼아서 조금씩 터트렸다. 커피와 대나무로 만든 커피 깔때기가 한 세트인 완벽한 구성을 보니 친구 얼굴이 떠올라서 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내 마음이 멈춘 곳은 그림엽서를 파는 곳이었다. 수많은 그림 작품 속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코끼리 한 쌍이 코로 하트를 한 그림엽서로, 왠지 모르지만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그런데 부모님은 ‘여행 가서 아무것도 사오지 말라’고 하셨고 나는 정말 착한 딸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이런 말은 잘 듣는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행복한 한 쌍이라기보다는 안정감과 단단함을 느꼈다. 아마도 부모님을, 힘든 세상을 잘 극복한 인생 선배 정도로 생각해서 단단한 코끼리에 투영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엽서를 새로 이사한 집에다가 부모님 대신 나를 지켜보는 수호신으로 붙여 놓았다.
라오스의 산과 안개를 검정과 회색으로, 사람을 주황색으로 드러낸 두 장의 엽서에 손이 갔다. 라오스를 내가 좋아하는 정적인 느낌… 배에서 노를 젓고 있지만 실제로는 멈춰 있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것 같은 분위기라서 차분함보다 적적함에 더 가까운 감정이 들어서 좋았다. 그림이 도시 분위기보다는 내 감정에 와 닿아서 매력적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었는데, 너무 커서 한국으로 갖고 가는 것도 힘들고 보관도 어려워서 포기했다. 야시장이라 몰랐는데, 귀국해서 보니 엽서는 그린 게 아니라 프린트된 거였다. 역시 꼼꼼히 봐야 보인다.
여행을 즐기고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후회는 저렴한 거라도, 작은 거라도 기념품을 더 많이 사지 못한 것이다. 캐리어가 넘치고 공간이 없어도 손에 봉지로라도 들고 올 걸… ‘이거 친구 줬으면 좋아할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여행 후의 나에게 찝찝한 기분을 만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회사 사람들, 친구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행 후기를 이야기하다 보니 빈손인 게 무척 마음이 쓰였다. 이런 마음이 들 바에는 내 몸이 불편하더라도 양손 무겁게 사오는 게 낫다.
정말 ‘눈에 보일 때 사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게 내가 사지 못한 큰 그림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나서 아쉬워 속이 쓰리다. 과소비(과한 만족 실현)를 하면 카드 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슬픔이 되풀이되니까 과하지 않은 정도에서 순간의 선택을, 하고 싶은 방향으로 해야 한다. 그때가 아니면 오지 않는 순간이 있다. 소고기가 적당히 익는 순간, 우리는 ‘지금이야!’라고 외친다. 맛있는 음식의 순간이 여행에서는 늘 존재한다.
“여행은 늘 지금이야,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