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고 직진만 하면 예능이 다큐가 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열세 번째 라오스 이야기

by beingwriter

루앙프라방에서 ‘여행과 역경’이라는 영화를 한 편 찍었다. 방비엥에서 차를 타고 4시간 정도 위로 올라가면 루앙프라방이 나오는데, 이곳은 방비엥보다 더 조용하고 아늑한 도시다. 힘들게 차를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간 목적은 거짓말 같은 꽝시 폭포를 실제로 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신선놀음도 하기 위해서였다. ‘꽝시’는 우리말로 ‘사슴’인데 왜 ‘사슴 폭포’인지 나도 잘 모른다. 혹시 사슴의 맑은 눈을 닮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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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시 폭포가 있는 곳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고 중간에 화장실도 잘 조성되어 있었다. 초행길이라 일단 직진으로 올라가 다다른 곳에 말할 수 없는 ‘한 폭의 예술’이 움직이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미리 조사해서 갔으면 오른쪽으로 빠져서 절경을 보며 올라갔을 텐데 우리는 아스팔트 같은 길을 그저 올라갔다. 그래도 내려올 때 보았으니 괜찮다.


우리가 만난 꽝시 폭포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사람들이 올린 사진들은 가짜였다. 실물을 담을 수 있는 건 눈밖에 없다.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허상 같았다. 석회질 덕분에 진주 같은 뽀얀 색깔과 에메랄드 빛이 만나서 물속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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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같은 꽝시 폭포 옆에 산에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다른 여행객들이 올라가길래 더 멋진 모습이나 폭포의 상류가 있을 줄 알고 가파른 산을 올라갔다. 백세심과 임순수는 등산을 극혐 하는 동생들인데도 언니 둘이 올라가니 힘들게 좇아 올라왔다. 진짜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지 알기 때문에 더 부담되었다. 아마 식도 정도에 욕이 가득했을 게 분명하다. 앞서 가던 나는 문득 ‘정말 올라가면 무언가가 있을까? 이 길이 맞나?’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땀이 꽝시 폭포처럼 흘러 몸이 축축해져 부피만 큰 게 아니라 무겁기까지 한 스펀지가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뒤에서 보이지 않는 네 개의 눈이 빨간 레이저를 쏘는 것 같아서 더 땀이 났다.


눈빛과 나에 대한 의심을 애써 모른 척 한 채 더 걷다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외국인이 보이자 ‘이때다!’하는 생각에 짧은 영어로 “저기에 폭포가 있나요?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니 그분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고, ‘뭐가 없다’는 말을 웃으며 건네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여길 왜 올라왔을까?’라는 자책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물어본 나를 혼자 칭찬하며 방향을 돌렸다. 역시 난 날 믿지 않아,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도 아니야.


여행을 예능으로 갔다가 잘못 선택하면 다큐로 장르가 바뀔 수도 있고 스릴러가 될 수도 있는데, ‘아, 왜 로맨스는 없나?’ 여하튼 그럴 때마다 자책하고 탓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니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여행에서는 내가 작가이고 배우이며, 감독이다. 대본이 없어, 촬영하면서 대사와 장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영화가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방향을 잘 잡아 나아가야 한다. 아, 그래서 내가 산으로 갔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나를 건강하게 단련시키는 휴양 컨셉에 맞게 우리는 이날 마음과 몸의 건강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그때 물어보지 않고 그냥 직진만 했다면 이 글은 분노로 타버려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휴양이 아닌 극기훈련으로 끝나지 않게 돌아가란 걸 알려준 외국인 친구야, 정말 베리 땡큐.



“중력의 힘을 막을 수는 없지만, 방향을 바꿀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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