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열네 번째 라오스 이야기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 그래서 그때를 기억하게 만들거나 조심하도록 주의를 준다. 한 폭의 예술작품인 꽝시 폭포에서는 수영을 금지하고 있다. 제일 멋있는 상류에서 사진을 찍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천국의 계단’이 여러 개 있었다. 이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천사들이 내려와서 놀다가 갈 것 같은 푸른 빛깔의 자연 수영장이 있고 거기엔 라오스 아이들과 여행객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물에 들어갈 생각으로 래시가드를 입고 갔기 때문에 바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물의 온도는 가본 적 없는 시베리아처럼 차가워서 발만 들어가고 더는 전진도 후진도 하지 못하고 쭈그려 앉아 버렸다.
엉덩이와 다리부터 익숙해지길 기다렸는데, 물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임순수와 김 언니가 나에게 ‘저 외국인들이 네가 볼일(아마도 소변?) 보는 줄 알고 화장실이 저 옆에 있는데’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줬다. ‘아니,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자연환경을 내 몸 속의 일부로 오염시킬 사람으로 본 게 억울하면서도 아시아인을 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할 것 같아서 화가 났다. 그러나 당시 그들은 짐을 정리하던 중이었고 좇아가서 마음의 생각을 영어로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혼자 씩씩거리며 물 밖으로 나와서 그 말을 알아듣고도 가만히 있던 임순수와 김 언니에게 “아니라고 했어야지! 왜 가만히 있었어?”라고 찡얼거렸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건 그들의 오해다. 그런데 그런 오해를 할 만큼 내가 행동한 것을 알기에 그들을 탓하거나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들 머릿속에 있던 편견이나 생각이 이런 오해를 일으킨 게 아닐까? 그들의 오류는 순수한 실수이기보다는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그리고 아시아인을 무개념으로 취급한 오류지만, 이 또한 서양인에게 가지는 나의 일반화 오류일 수 있으므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부디 그 친구들이 나한테 가진 생각이 오해라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수박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우리 옛말처럼 내가 굳이 그곳에서 쭈그려 앉지 않았으면 오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니 나 또한 조심해야 하고 잘못한 거다. 정말 살다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많다. 내가 의도하지도 않고 생각 없이 한 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하는데, 이때 정말 나는 아무런 오류가 없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오해를 해결하기 쉬워진다. 오해는 생각보다 가볍게 그리고 쉽게 시작된다.
“오해해서 나한테 화부터 내지 말고 오래 생각해 봐…. 너를, 그 다음에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