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별 Oct 05. 2023

벗어날 수 없는 질문

실천11.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하기

아, 산다는 건 무엇인가... 사람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철학자로 만드는 순간이 다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단 하루도 도망칠 수 없는 질문, "오늘 저녁 뭐 먹지?"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어린 시절에는 이 질문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직장 근처에서 혼자 살 때도 퇴근길에 그날그날 먹고 싶은 빵이나 과일, 시리얼만 사 오면 간단히 해결되어 사라지는 질문이었다.


메뉴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혹은 당연하게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요리보다는 설거지가 마음이 편했고,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요리에는 영 관심도 소질도 없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여자가 부엌일을 하는 것이 사회가 설정한 기본값이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 있던 것도 나였기에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따뜻한 저녁을  차리는 일에 적응해야 한다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행히 남편이 요리를 잘하는 편이라서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울기까지 하며  괴로워하는 나를 계속 다독이고 도와주었다.


원하지 않아 시작한 일도 꾸준히 하면 재미를 붙이고 좋아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집밥 레시피 책을 사고, 요리팁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블로그에 매일 내가 준비한 저녁 메뉴 사진을 올리기도 하서 성취감을 맛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 천천히 볶음밥, 카레 같은 한 그릇 요리에서 찌개, 전골과 반찬까지 조금씩 저녁 메뉴의 범위와 규모를 넓혀갔다. 어떤 날은 찹쌀반죽 옷을 입혀 쫀득 바삭한 탕수육도 튀겨 먹고, 돈가스용 돼지고기를 망치로 때려서 밀가루, 계란, 튀김옷을 입혀 돈가스를 만들고 버터와 밀가루로 루를 만들어 수제 돈가스 소스를 곁들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좀 자란 후에는 함께 쿠키나 빵을 구워보면 좋을 것 같아서 초코칩쿠키나 바나나머핀을 시작으로 소보로빵, 슈크림빵, 단팥빵까지 직접 만들어주었다.


이전까지 나에게 식사는 그저 배를 채우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고기나 생선보다 채식을 선호하는 정도의 편식이 있을 뿐 맛에 민감한 사람도 아니었다.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이 저렇게나 요리에 열과 성을 다했던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의무감으로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요리가 즐겁거나 재미있지는 않다. 울상을 지으며 도저히 메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남편을 괴롭히기도 하고, 엄마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인 줄 아냐며 아이들에게 힘껏 생색을 내기도 한다. 그래도 혼자서 빵을 우물거리던 그때보다는 지금이 좋다고 생각한다. 늘어난 고민과 한숨의 무게만큼 만족과 뿌듯함, 그리고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엄마가 몇 시간 동안 해준 음식보다 4분 완성 컵라면을 더 사랑하는 두 아들을 위해서... (역시 인생은 아이러니!)

작가의 이전글 어때요, 참 쉽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