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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Oct 06. 2023

사람이 되고 싶은 호랑이

실천12. 챌린지 현명하게 활용하기

지금 내 모습이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만약 ~했다면'과 '나도 ~싶다'의 물살에 휩쓸릴 때가 있다. '만약에 내가 이중언어 구사자라면', '만약에 내 월급이 지금의 두 배라면'...이나 '나도 저렇게 유연하고 싶다', '나도 저렇게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다'... 같은 생각들은 한 번 시작되면 마술사 손에서 끝없이 뽑혀 나오는 손수건처럼 한참이나 계속된다. 그리고 마무리는 '에휴~'하는 한숨.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한숨만 쉬고 있으면 현실과 만약에의 차이가 계속 벌어질 것만 같아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목표나 이번 달 목표를 적어두고 '또 실패했네'하고 실망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슬프게도 나는 자율성 안에서는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돈이든 시간이든 체면이든 무언가를 잃기 싫다는 마음이라도 동력으로 삼아야 했다.


마침 '갓생', '챌린지'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고, 카톡 오픈채팅방이나 네이버 밴드에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으쌰으쌰 하며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에 나를 던져놓으면 마음이 조금 해이해지는 날도 나를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5시에 일어나기', '아침마다 영양제 먹기', '매일 일기 쓰기' 같은 생활습관부터 '매일 뉴스 스크랩하기', '매일 3장 독서하기', '하루 30분 영어공부하기' 같은 자기 계발 영역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그 열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긴 한숨을 힘찬 기합으로 바꿀 수 있었다. 심지어 '챌린저스'라는 앱에 가입하면 돈을 걸고 챌린지에 참가할 수 있는데, 미션 완수 후에 내가 낸 돈과 챌린지에 실패한 사람들이 낸 돈을 보너스로 돌려받는 시스템이라서  확실한 동기부여가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챌린지에 빠져들었다. 심할 때는 하루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미션 인증하느라 바쁠 정도였다. 기상시간 사진, 물컵 사진, 운동하는 사진, 책 읽는 사진, 밑줄 그은 신문 사진, 영어문장이 적힌 노트 사진... 하루는 '매일 걷기' 챌린지에 참여하느라 폭우 속에서 아파트 주변을 걷는데, '나 정말 기특하다' 싶었다가 '이게 뭐 하는 거지' 하는 현타가 밀려오기도 했다. 잘하고 싶고 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거나, 모든 미션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실수로 인증사진 업로드를 놓쳐서 참가비를 날리면 속상하고 화가 났다. 과유불급에 주객전도가 따로 없었다.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꾸려고 애를 쓴 것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일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 개천절에, 아이들과 단군신화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실패한 호랑이구나...' 그저 내가 호랑이띠라서 더 마음이 간 것인지도 모르겠고, 같은 실패자로서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환웅님이 호랑이 식성을 생각해서 하루 한 번 정도 쑥과 마늘을 먹으라고 했다면 호랑이도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지금은 내가 꼭 읽고 싶었던 책의 필사 모임과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보탬이 될 영어공부 챌린지에만 참여하고 있다. 미라클 모닝도 혼자서 계속 도전 중인데 성공하면 뿌듯하게 '나와의 채팅방'에 아침 풍경 사진을 올리고,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틈새시간을 찾아 책도 읽고 필사도 하면서 벌충한다. 몇 년째 버킷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는 다리 찢기와 물구나무서기에 언젠가 성공하기 위해서 고관절 스트레칭이나 코어 운동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한다. 어쨌든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숨 쉴 틈을 준다. 실패했을지라도 도전했기에 여우나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가 신화 속에 이름을 남겼다. 언젠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작심삼일을 반복하다 보면 정성에 감복한 환웅이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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