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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Jul 06. 2023

딸이 키우는 아들

실천3 - 딸로 태어나 서러운 아들 둘 엄마로 살아가기

"에휴, 니가 아들로 태어났어야 되는 건데... 쯧쯧"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면 '장손인 큰아들에게만 아들이 없다'며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친척들로부터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에게는 고모 두 분, 작은 아빠 세 분이 있는데 6남매 중 장손인 아빠에게만 아들이 없다. 종갓집 큰며느리로 시집온 엄마는 딸 둘을 낳고 몸이 아파 더 이상의 임신이 어려웠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도대체 몇 번의 임신을 반복해야 했을까.) 게다가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을 염려하시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작은 아빠의 둘째 아들을 족보상 아빠의 아들로 옮겨두셨다. 비록 족보가 이제는 거의 보는 사람이 없는 기록이라고 할지라도 세상 어딘가 존재하는 자료에서는 사촌동생이 친동생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들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의 불효까지 저지를 수 없던 나는, 조용히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제 때'에 맞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들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에이고~ 아들만 둘이여? 목메달이네! 딸 하나 더 낳아야지 않겄어?" 내가 원하면 셋째는 딸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하는 의문점은 차치하더라도 이쯤 되면 억울하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내 설움을 알고 하늘이 아들을 둘이나 보내주셨나 싶었는데, 이젠 딸이 없으면 노년이 외롭다며 생면부지 어른들의 안쓰러운 눈빛을 받고 있다.


​도대체 아들이 뭐길래 딸로 태어나서 안타깝다고, 아들만 낳아서 아쉽겠다고 귀에 피가 나도록 내가 원하지 않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들은 어릴 때 말썽꾸러기 개구쟁이라 키우기 힘들지만 커서는 든든하게 집안의 큰 일을 해결하고, 딸은 어려서는 애교로 기쁨을 주고 커서는 살뜰하게 부모님을 잘 챙긴다는 암묵적 동의는 언제부터 이루어진 것일까. 종종 작은엄마랑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대학생 사촌 남동생이나, 딸이지만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나는 아들과 딸을 규정하는 표준분포표에서 얼마만큼 벗어난 사람들일까.


내향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우리 집 두 아들을 보고 여느 사람들은 <'아들인데도' 정말 얌전하다>고 말한다. 그냥 <'아이가'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네요>라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들이니까 운동 하나는 시켜야 하고, 아들이라서 옷가게에 가도 남자아이들용 파란색, 회색, 검은색 옷을 사게 된다. 그런데 우리 집 아들들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분홍색과 주황색을 좋아한다. 고양이와 토끼를 좋아하는데 그런 디자인의 옷은 허리라인이 잡혀있거나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어서 로봇과 자동차가 그려진 옷을 입게 되는 일이 많다. 머리가 짧은 여자도 있고 머리가 긴 남자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아이들 머리가 단발 정도만 되어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여자애가 남자처럼 옷을 입었냐고 물어보신다. 또래 아이들마저 여자도 아닌데 왜 머리를 기르냐고 물어오자 결국 아이는 여자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머리를 잘랐다.


내가 아들을 키우면서 힘든 점은 아들의 산만함이나 과잉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아들을 키우는 일은 당연히 힘들 것'이라 가정하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었다. 그리고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너무나도 쉽게 낙인찍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서로 다른 보편적인 특성이 분명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 틀에 너무 갇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아이가 주변 시선 때문에 파란색 옷을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인데 운동을 못한다고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귀여운 티니핑이 좋은데 억지로 카봇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아이/여자아이라는 큰 숲을 보기보다 아기자기한 인형을 좋아하는 큰 아이, 웃기고 재치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로 각각의 아이를 바라봐주고 싶다. 남자 같은 여자아이, 여자 같은 남자아이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사진 출처 - https://www.prettymummasays.com/raising-son-daughter-equal-parenting-pa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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