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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Sep 20. 202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실천6. 일상생활 속 서점 여행하기

책을 정말 좋아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 사는 일'을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다. 책장 빈 공간에 빈틈없이 테트리스를 하고도 모자라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책탑을 이루어 집 안 곳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듯 존재감을 비추는 오브제로 존재하고 있다. 작품 제목은 [So many books, so little time]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매달 텅 비다시피 한 통장을 마주하면서도 책 사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에는 굿즈, 한정판 에디션,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소식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동네 책방'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을 지키는 '책방지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우주를 대면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담긴 한 권의 책 역시 우주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만의 세상이 너무나 작고 조용하게 느껴져 외로울 때도,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도, 수많은 소우주를 품고 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된 기분으로 서점을 찾는다. 내가 방문하고 싶은 목적지가 분명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정처 없이 헤매는 기분으로 또는 우연히 발견한 멋진 장소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서점들어가는 문을 연다. 그곳에서는 숙련된 가이드(책방지기)가 날 반겨주고, 그날의 기분이나 그즈음의 고민에 따라 내가 방문하면 좋을 행성(책)을 알려준다. 이 현명한 가이드는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만 줄줄이 사탕처럼 보여주는 알고리즘과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매번 행복한 고민을 게 된다.


세상 모든 책이 존재할 것만 같은 인터넷 서점이 주는 폭넓은 선택의 자유로움이나 북적이는 대형 서점 속 나에 대한 무관심이 주는 편안함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소규모 북토크 몇 번과 나의 안부를 묻는 책방지기의 다정한 안부인사 몇 마디로 동네책방 팬이 되어버렸다. '꼭 읽어봐야지' 내내 마음만 먹었던 고전작품의 번역가, 마음이 힘들 때마다 펼쳐보던 그림책 작가, 모든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에세이의 작가님을 만나 몇 초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싸인을 받으면서 얻는 에너지와 감동은 꽤나 중독성이 강한 것이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책 앞, 뒤표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책 등을 훑고 책장을 넘겨보고 종이의 질감을 느끼는 과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온 책에는 더욱 정이 간다. 책을 추천해 주시는 책방지기님과 눈을 반짝이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마음속에 찌르르 번지는 쾌감은 인터넷 서점의 리뷰를 읽으며 느끼는 공감과는 매우 다르다. 책에 책방 고유의 도장을 찍거나, 책방 로고가 찍힌 책갈피를 책에 끼워 서점을 나서는 기분은 오직 나만을 위해 맞춤제작된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유서를 써보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책방 공간에 둘러앉아 그림책을 보고 눈물을 훔치며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경험은 서점과 지역사회가 연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점탐방을 주제로 1박 2일 전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림책 서점이나 독립출판물만 판매하는 서점부터 인문학 서점, 예술 서점까지 책방지기만의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작은 서점들이 많아서 한 서점에서 다음 서점으로 넘어가는 길이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전주에 있는 서점만 봐도 이렇게 다양한데 전국적으로 얼마나 다양한 매력적인 서점들이 있을지 생각해 보면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기회를 만들어서 른 지역의 작은 서점들에도 꼭 찾아가 보고 싶다.


장서가와 함께 사는 가족들은 거실, 안방, 공부방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책 때문에 신경이 거슬릴지 모르겠다. 책방 행사에 가야 한다고 주말 오전에 혼자 집을 나설 때는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서점을 방문했는데 학습만화만 찾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꾸준히 서점에 간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내 좁은 세계가 조금이라도 넓어지기를 바라며 기꺼이 책값을 낸다.


내 좁은 시야를 틔워주는 놀라운 우주를 빚어내는 창작자를 응원하는 마음,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는 편집자와 출판사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마음, 큰 경제적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운 우주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정성을 쏟는 책방지기에게 보답하는 마음,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을 그저 빈 손으로 누리기만 할 수는 없다는 빚진 마음을 떠올리면 책 한 권 값은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책 한 권을 사는 일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다며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짝꿍이여, 부디 서점에 가는 일이 이렇게나 범우주적인 일이라는 걸 알아주시길!)


오늘은 자기 전에 우주의 기운을 모아 동네  서점지기님에게 책 주문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세상에 책은 너무나 많고 시간은 부족하며 내 지갑은 얇으니 좋은 가이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커버사진 출처: https://stock.adobe.com/kr/search?k=universe%20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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