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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Oct 01. 2023

떨리는 내 마음도 통역이 되나요?

실천7. 외국어 학습자로 생활하기

"At that time I was a young teacher, just getting my feet wet."(그 당시 나는 일을 시작한 어린 교사였다.)


내가 교사로 처음  내디딘 순간을 이야기하며, 아침 출근길에 EBS 영어방송에서 듣고 기억해 둔 to get one's feet wet(~를 처음 시작하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보았다. 쉬운 단어들이지만 아직 입에 붙지 않아 떨리는 마음으로 문장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어보고, 말하는 순간에도 내 말을 듣는 원어민 강사의 표정을 살펴본다. 틀린 부분은 없었나? 내가 문맥에 자연스럽게 사용한 걸까?


앞서 말한 표현처럼, 꼭 'start'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어떤 일의 '시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고 싶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는 영어 공부에 매진하기로 결심한 이후 매일 아침 원어민 강사와 짧게 대화를 나눈다. 정해진 주제는 없고 전날 있었던 흥미로운 일 또는 기억에 남는 일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받는 식이다. 이때 사소한 문법적 오류다는 단어 사용에 따라 달라지는 뉘앙스나 말맛에 좀 더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 하면 똑같이 '보다'인데 영어에서 'see'와 'watch'가 사용되는 맥락이 다르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see는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상태를, watch나 look at은 의식적으로 보는 행위를 나타낸다는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원서로 읽고 있는 [The Midnight Library]에서 이런 장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It's not what you look at that matters, it's what you see." 얼핏 봐서는 see보다 look at이 더 의식적인 노력이 들어간 일이니까 그게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문장에서는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원어민 강사에게 물어보니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안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look at은 시각적 인식, see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행위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오래 해왔고 다른 사람들보다 영어 사용에 익숙하지만, 각보다 자주, 렇게 너무나 쉬운 단어들에서 주춤거릴 때가 있다.


대로 내가 생각한 것을 영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궁색한 어휘력에 가슴을 칠 때도 많다. 영어 어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영어로는 한국어와 같은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는(lost in translation) 경우도 많아서, 한국어로 말할 때법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표현력이 영어로 말하는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을 못 춘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또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짬짜면'을 번역해야 하는 번역가의 마음으로 '찌질하다'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엄친딸'을 나타내는 적당한 표현은 없나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찌그러진 풍선에 바람을 넣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삭을 줍는 느낌으로 다양한 영어 표현을 모으고 있다. when pigs fly(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earworm(수능금지곡)처럼 재미난 표현도 있고,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to get worse 말하다가 to take a down turn이라는 숙어 deteriorate 같은 어려운 단어로도 표현해 보는 중이다. 까다롭고 결벽증적인 내 일면을  squeamish라는 생소한 단어로도 묘사해 본다. 그동안 모자이크 같은 저화질로 다소 거칠게 내 생각을 드러내다가 점점 FULL HD고화질로 개선 중이랄까. 전에 비해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달까.(영어로 colorful language는 욕설이나 폭력적인 말을 뜻하니 이 문장을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해서는 안 되겠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일은 늘 떨림을 동반한다. '내가 몰랐던 문화적 차이로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발음을 실수해서 의미 전달에 오류가 생기지는 않을까'하는 긴장감은 물론이거니와 '도대체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할까?!' 하는 근본적인 불안이 늘 께한다. 흔들리는 내 눈동자와 눈을 맞추고 나의 기나긴 Um... 과 Well... 을 견뎌주는 원어민 선생님을 보며 오늘도 용기를 낸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언어에 내 떨림을 한 스푼 얹어 전달하는 것과 같기에, 대부분은 미소와 인내로 나의 떨림을 '당신을 이해하고 싶고 나도 이해받고 싶다'는 간절한 메시지로 해석해 줄 것이기에.


*표지의 사진은 영화 Lost in Translation의 포스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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