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학의 끝을 잡고

실천5. 시간의 마법사가 되어보기

부부교사와 초등학생 두 명이 함께 보내는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가장 먼저 개학을 맞이하는 남편은 자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진다며 점점 늦은 시간에 잠들고(선생님도 개학이 눈물 나게 아쉽답니다), 아직 개학이 일주일 정도 남은 두 아이는 다가올 운명에 애써 흐린 눈을 뜨고 늦잠과 게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삼식이 네 명의 돌밥(돌아서면 밥!)을 챙겨가며 힘겨웠던 방학인데 다시 분주한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도 못내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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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얼화아수목금퇼'이라는 말을 보면 평일에 비해 주말이 얼마나 빠르고 아쉽게 지나가는지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 방학은 숨 가쁜 학기생활을 치열하게 보낸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긴 주말과도 같은 시간이니까, 1학기-여름방학-2학기-겨울방학으로 이어지는 1년은 [이이이이이일하아아아악기-열밯!-이이이이이이하아아아악기-결밯!!]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개학을 앞두고 '방학장례식'을 치르는 학생들 심정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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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연가, 방학과 같은 휴가 기간은 긁지 않은 복권과 같아서 내가 꿈꿨던 대로, '푹 쉬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복권 1등에 당첨되기 어려운 것처럼 내가 생각한 대로 그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게으름의 극단으로 치달아 읽고 싶었던 책을 옆에 쌓아두고 유튜브를 보다가 몇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하고, 반대로 부지런함의 극단으로 향해서 그동안 묵은 청소나 집안 정리로 몸살이 나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쉬기 위해 떠난 즐거운 여행길이 교통체증이나 몸의 피로 때문에 고행길이 되기도 하고, 가족들과 몸을 부대끼며 지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히 마찰도 잦아지기 마련이다. 행복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면 그건 그대로 슬픈 일이지만, 즐거운 방학이 빨리 지나가는 게 아쉽다고 해서 유쾌하지 않은 일로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것은 아닌데... 꿈꾸던 가능성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잘 보내도, 잘 보내지 못해도 어딘가 아쉬운 방학이 되고 만다.

이런 아쉬움이 '며칠 뒤 개학'이라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만나게 되면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을 잠시나마 꿈꿔보게 되는 것 같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동짓날 기나긴 밤을 베어내어 접어두었다가 님이 오시면 펼치고 싶다'는 황진이의 시조나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가모토의 눈을 사용해 시간을 되돌리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나는 아직 1단계에 돌입하지도 못한 채, 사람들이 편의상 정해둔 하루 24시간과 같은 일정한 시간과 다르게 '우주의 시간은 멈춰진 곳에서 빠르게 흐르고 움직이는 곳에서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른다'는 과학이론까지 끌어들여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에서 방학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망상에 젖어 다소 구질구질하고 쿨하지 못한 모양새에 빠져있다.

내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허황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너무나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고 있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저 우리의 의식이 행복한 일에 몰두하면 시간에 대한 신호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힘든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에 힘을 얻어 그토록 꿈꾸던 시간의 마법사가 되어보려고 한다. 꿈꾸듯 달콤하고 행복한 순간이 조금이라도 느리게 가게 하고 싶다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애써 의식해 보면 어떨까. 빛으로, 소리로, 냄새로, 촉감으로 되도록 많은 순간을 느끼고 글 속에 시간을 박제하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내 손에 아직도, 그것이 단 몇 초일지라도, 여름방학의 끝자락이 잡혀있다.

*커버사진 출처: https://quotesgram.com/last-day-of-summer-qu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