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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맘 Mar 18. 2021

나의 두 번째 직장

잠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커피숍에 들려 책 좀 보다 들어가자.’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좀 일찍 일이 끝났다. 쌍둥이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어젯밤 일을 생각하면 바로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3살 된 쌍둥이를 두고 복직을 결정하며 어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일을 하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퇴근길이 두려워졌다. 퇴근 후 바로 집으로 향하는 것은 쉬는 시간 없이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하는 기분이랄까?

 

오늘만큼은 휴식을 취하고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커피숍으로 향했다. 읽고 싶었던 책을 가방에서 꺼내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 읽기 시작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목시계의 분침은 초침처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베이비 이모님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해야 하기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만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렇게 안 가더니 혼자만의 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      


현관 앞, 나는 다시 정신무장을 한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커피숍에도 들려 카페인도 보충하고 에너지도 충전했다. 

‘오늘은 정말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하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꾹꾹 누른다.      


띡↗띡↗띡↗띡↘띡↗띡↘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다다다닥 '엄마~~~'하며 현관문 앞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온다.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꼭 껴안아 준다.      

이만하면 두 번째 직장에서의 스타트는 좋았다.      


아이들과의 찐한 포옹을 하고 나면 얼른 두 번째 직장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아이들이 비벼대도 긁힐 만한 것이 없는, 침을 흘려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아주 검소(?)하고 순수(?)한 옷으로 말이다.      

두 번째 직장에 걸맞은 옷을 갈아입자마자 화장을 지우기 위해  욕실로 향한다. 욕실 문 앞에서 엄마가 빨리 나오길 기다리며 지키고 있는 쌍둥이들을 보면 욕실 문은 닫는 것도 샤워하는 것도 내겐 사치다.  

엄마가 빨리 나오길 기다리는 쌍둥이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두 번째 직장에서의 육아라는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쌍둥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엄마를 수시로 불러대며 쫑알거리기 시작한다. 아직 발음이 어눌한 아이들의 말을 백 프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놀람과 감격의 맞장구는 필수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먼저 얘기하겠다고 다투기도 한다. 

      

“엄마는 귀는 두 개니깐 너희들이 동시에 얘기해도 다 들을 수 있어. 서로 싸우지 말고 그냥 얘기해도 돼”      


아이들이 동시에 말하도록 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쫑알거림을 짧고 굵게 끝내는 방법이다. 

듣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무장하고 들어왔던 내 정신은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주겠다며 아이들을 방으로 유인해 침대에 같이 누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글씨들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책에 쓰여있는 말인지 모를 단어들이 내 입을 통해 방언처럼 흘러나온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엄마를 더 이상 못 봐주겠는지 딸아이가  ‘똑바로 읽어달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이미 잠에 취해 버린 나는 아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 또한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만 자자고 소리를 지른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던 나의 결심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다.       

결국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 나와 딸의 몇 번의 소리 지름이 오간 뒤 누가 먼저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의 다짐을 써놓은 벽에 붙여 놓은 벽보를 본다.      


아이의 하루는 성인의 1년이다.’

엄마 괴롭히려고 읽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보다 먼저 잠들지 말자.’     

 

졸음이 몰려올 때 잠을 쫓기 위해 정신이 번쩍 들만한 글귀들로 벽에 써서 붙여 놓았다. 하지만 졸음 앞에선 소용없었다. 졸음이 몰려오면 벽보를 봐야겠다는 생각도 안 났다. 글귀들은 나를 깨우는 위한 것이 아니라 새벽마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들에게 무릎 꿇고 반성하게 만드는 글귀들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래 퇴근 후 책 읽어주기를 꾸준히 했다. 그래서 책이 좋아 책 좀 더 읽어달라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는데 졸음이 몰려온 엄마는 한순간에 버럭 하는 엄마로 돌변했다. 졸음 앞에서는 나의 육아관이고 나의 사명이고 다 없어졌다.       




졸음 앞에 소리 지름과 울음으로 끝나는 파국을 아이들과 몇 번을 반복한 후 졸음 앞에 통제가 되지 않는 나를 인정하게 됐다. 이젠 더 이상 아이들 앞에서 정신 잃은 채로 그만 자자고 소리 지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더 이상 울며 잠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정신이 말짱할 때 책 읽어주는 소리를 핸드폰에 녹음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졸려할 때 핸드폰에 녹음된 엄마의 책 읽는 목소리를 틀어줬다. 억지로 자라고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지 않기 위해 은은한 불빛의 스탠드도 켜주웠다. 


그리고 잠자리에서 충분히 읽어주지 못한 책은 아이들 등원하기 전에 읽어줬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책을 읽어주니 아이들도 엄마와 헤어지는 시간을 여유롭게 받아들여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직장에서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아이들 앞에 더 이상 망가지는 엄마로 보이고 싶지 않아 내 상황에 맞는 육아방법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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