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선생님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하다. 무슨 일일까? 보통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는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거나 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기운이 없어할 때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난다고 연락이 오면 양가 부모님이 모두 지방에 계셔 남편과 번갈아 연차를 사용해 아이들을 돌봤다.
그런데 이번엔 열이 난다는 연락이 아닌 어린이집에서 돌고 있는 눈병에 걸린 것 같다는 전화였다. 눈병에 걸렸다는 것은 하루, 이틀 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완치 판정까지 받아야 등원을 할 수 있고 완치가 되기까지 보통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한 전염병이다.
난 어린이집 선생님과 전화를 끈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한다. 남편과 전화로 상의해봐도 남편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둘 다 이미 잡혀 있는 회사 일정으로 일주일 내내 휴가는 낼 수 없는 상황임을 남편과의 통화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럼 이 일을 어쩐다...'
일주일 동안 아이들을 봐줄 곳을 찾아야 했다. 결국 비빌 언덕은 부모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2시간 거리로 그나마 가까운 친정집에 아이들을 부탁해야만 했다. 퇴근 후 아이들 짐을 챙겨 친정집에 맡기고 내일 출근을 위해 늦은 밤 서울로 서둘러 돌아온다.
항상 아이들 소리로 집안이 가득 찼던 집이었는데 늦은 밤 아이들이 없는 집은 조용하다 못해 쓸쓸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내일 아침 등원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긴장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빌라에 살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쌍둥이들을 각각 깨워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 계단을 내려와 울퉁불퉁한 길을 유모차 끌고 등원시키는 일이 내겐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복직한 지 3개월 채 되지 않아 어린이집 바로 앞 상가주택으로 이사할 정도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것은 내게 큰 부담을 주는 임무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상가주택은 너무 편했다. 현관 앞에서 유모차를 태워 길만 건너면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울퉁불퉁한 길도 없다. 어느 날 그 상가주택에 엘리베이터가 아침부터 고장 난 날이 있었다. 그날은 쌍둥이들을 각각 업고 7층의 계단을 두 번씩 오르내리며 아이들을 등원시켜야만 했던 일도 있었다.
아이들의 등원을 책임지고 있는 내게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준비해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일은 참 고된 일이었다. 특히나 다른 날보다 숨 가쁘게 출근한 날이면 본인 몸만 챙겨 출근할 수 있는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 여직원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 없이 출근하니 행복하지 않았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커피타임도 즐겁지 않았다. 아이가 아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몸은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 늘어지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이들이 아파 떨어져 있다고 이렇게 까지 기분이 다운될 일일까? 아이들이 없는 일주일은 뭘 하든 기운이 나지 않았고, 가슴 어딘가에 큰 구멍이 뚫린 듯 헛헛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없는 집, 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없는 집은 내게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주지 못했다.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아이의 얼굴과 팔다리를 쓰다듬어주던 것,
이마와 볼에 뽀뽀했던 것,
아이를 꼭 안고 욕실로 데려가 세수를 시켰던 것,
옷을 입히기 위해 아이의 몸 구석구석 만질 수 있던 것,
아이에게 했던 나의 모든 스킨십은 아침 출근길 나를 고단하게 했던 것이 아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나는 나를 충전해주는 중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은 워킹맘인 내게 하루를 활기차고 즐겁게 잘 지낼 수 있게 해주는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강력한 비타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