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은 중요하다. 아주 많이!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로 신이 났다. 오늘은 디자이너 친구 B와 앨런 플레쳐 회고전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이 전시는 홍대 상상마당에서 2월 16일까지 열린다. 홍대는 언제 가도 북적북적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는 씹어먹을 듯한 젊은이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1시 예정이었던 도슨트를 듣기로 계획하고 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도슨트 서비스가 중단됐다고 하여 아쉬웠다.
전시는 앨런의 디자인 일대기를 총 5개로 나누어서 시대별로 보여주고 있다.
1. 뉴욕에서 런던으로(1952-1962)
2. 플레처/포브스/질 (1962-1965)
3. 크로스비/플레처/포브스 (1965-1972)
4. 펜타그램 (1972-1992)
5. 앨런 플레쳐 디자인 (1992-2006)
전시 1에서 보여준 전시는 창작자가 처한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활기찬 분위기와 다양한 색감을 사용하는 뉴욕의 작업환경은 앨런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영국으로 넘어와 새로운 유행을 선도할 수 있게 했다.
전시 3에서는 작업방향이 달랐던 질이 빠지고 크로스비가 들어오면서 앨런의 디자인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역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중요하다. 좋은 팀워크를 이루기 위해서는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방향성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전시에서는 상업적인 목적을 떠나 순수하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간 앨런의 작업 물들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가 문자와 이미지를 조합하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다.
이 전시를 보면서 앨런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베베 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심플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문자가 기능하지 못하는 영역은 이미지가 더해지고 이미지로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문자가 도와주는. 이 두 가지를 전부 잘 해낸 그의 작업물은 솔리드 했다.
실제로 그는 정형화된 스타일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로지 본질만 남을 때까지 요소들을 줄이고 단순화시켰다고 밝혔다. 자필로 쓴 타이포그래피를 두고는 '쓰기'는 '그리기'와 같다고 말하며, 글자 하나하나가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의 작업 물들을 보면 글씨체, 색깔, 크기, 배치, 아이디어 이런 것들을 최상의 모습으로 조합해 놓은 것 같다. 멀리서 보면 간단해 보이던 작업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밀하게 기획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디테일에 감탄하고 그의 고집스러움에 감사함이 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전시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단순히 예술품을 감상한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작업물을 감상하며 그들의 인생 시나리오를 써본다. 그런 상상이 재미있고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기도 한다. 앨런은 평생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살았는데, 1931년생인 앨런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디자인 작업을 손에 놓지 않았던 건 아마도 아래와 같은 그의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디자인은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Design is not a thing you do, it is a way of life.
자세한 전시 정보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