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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8. 2020

귀국 후 찾아온 향수병

그리운 더블린 사람들과 기네스

더블린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약 1달이 지났다. 1년이 넘는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한국이 고향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많은 변화를 겪으며 적응기를 거치고 있다. 지난 외국 생활을 돌아보면 외로움에 강하다고 자부했던 나인데도 타지 생활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태여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들로 상처 받은 날이면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이 그리웠다.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살고 일하는 것은 분명 귀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들리는 것처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문화 차이를 마주하면 어느 한 문화가 우세하거나 열세하다는 가정 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를 이루는 문화적 배경은 무엇인지, 나를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무수히 많은 고민들이 따라온다.






삶이 고달프게 느껴질 때면 나는 펍에 가곤 했다. 혼자서도 개의치 않았다. 아일랜드에서 펍이란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교의 공간이다. 나이도 국적도 외모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누군가가 살아온 이야기, 그저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공간일 뿐이다. 


아이리쉬들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아일랜드는 문학과 예술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무려 4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해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B. Yeats), 사무엘 버킷(Samuel Beckett),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나는 펍에 갈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스토리 텔링에 능한지 감탄하곤 했다. 재미없는 이야기도 그들 특유의 장난스럽고 과장된 표현을 거치면 흥미로운 이야기로 변하곤 했으니까.


그리운 메리 아줌마와 노엘 아저씨 ㅠ.ㅠ    /     매일 저녁 아이리쉬 전통 노래를 연주하던 Darkey Kelly's Pub





내가 펍을 사랑한 이유 중 또 하나는 기네스이다. 원래 흑맥주 마니아다. 처음 친구들에게 아일랜드에 간다고 했을 때 몇몇은 오리지널 기네스 마시러 가냐고 할 정도로 기네스를 좋아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네스를 즐기지 못했다. 업장마다 조금씩 다른 기네스 맛 때문에 언제나 국내 맥주로 안전한 선택을 하곤 했다. 또 기네스는 한국에서 더욱 비싸다. 이렇게 말하면 좀 유난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더블린의 기네스는 정말 맛이 다르다. 일단 공장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 또 하루에도 수십 통의 케그가 동나는 판매량을 보면 더블린 펍에서 마시는 기네스가 세계 최고로 신선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기네스는 맛을 넘어 미학이 있다. 흑색과 백색의 대조가 주는 시크함. 손아귀에 딱 들어오는 안정적 그립감의 파인트 잔. 결정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따라지는 기네스는 그 기다림부터가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첫입에 와닿는 폭신한 거품의 느낌이란!      /      더블린의 엄청난 맥주 판매량을 보여주는 케그들





오늘따라 포근한 펍의 공기와 아름다운 기네스 한잔이 간절해지는 밤이다. 한국에 온 이후 강제 금주령이 내려졌다. 혼자서 펍을 가기도 좀 어색하고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기네스를 맛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펍보다는 카페를 선호했다. 요 며칠 답답함을 느꼈다. 새로운 분야에 취직을 도전하고 있고 매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블린에서 마시던 기네스 한잔이면 그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힌 손과는 다르게 말랑말랑한 웃음을 지어주던 바텐더 아저씨가 그립다. 누구는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런 내 꿈을 지지해주던 동료들이 그립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나 자신을 사랑하라던 19살짜리 친구의 조언이 그립다. 한국에 오면 영원히 사라질 줄 알았던 향수병이 이렇게 또 따라왔다. 



내일은 한잔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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