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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8. 2020

결심했어! 이 나라를 떠나기로

퇴사 후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는 당신께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텅 빈 시간이야


2014년 공공기관 인턴 6개월

2015년 상품기획 MD 8개월

2016년 사단법인 PM 2년 5개월


대학 졸업 후 공공기관 인턴을 시작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정규직 전환 인턴이 아니었기에 인턴을 마친 후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국내 작은 제조 유통회사에서 바이어로 일했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지독히 이기적인 사수를 만났다. 20대 중반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또다시 1년간의 취준 생활. 이미 조직생활을 경험한 후여서 그런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매일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이 27살. 나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급하게 일자리를 찾았다. 


매번 일을 그만둘 때마다 나 자신을 원망했다. 왜 남들처럼 진득하니 한 곳에서 버티지 못하느냐고, 왜 조직이 요구하는 가치들에 순응하지 못하느냐고. 사실은 나 스스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왜 그 일을 해야 하고 그 회사여야만 하는지.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삶을 이루고 싶은지. 그런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너무나 바쁜 세상이기에. 그 속에서 나는 지쳐갔다. 의미와 동기 없이 그저 바쁘게 살기만 하는 껍데기 인간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우선 내 시간을 되찾아 오기로. 난 그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노예가 되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한없이 슬펐던 것뿐이다.



내 인생을 내 것으로 되찾아 오는 일

그런데 막상 시간을 어디에 쓰고 싶냐고 자문했을 때 쉽사리 대답을 내놓을 수 없는 나 자신이 더 싫어질 때가 있었다. 분명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내 인생의 큰 그림은 그리지 못하는, 이미 누군가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삶이었다. 30대를 맞이하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 인생을 내 것으로 되찾아 오는 일. 그 여정의 시작을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로 정했다. 누군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이 머무르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그동안 나를 옭아매던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로, 독립적인 나로. 그렇게 1년의 갭이어를 통해 자신을 알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왜 아일랜드였을까?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려고 결심했을 때 국가 선별의 첫 번째 조건은 영어 사용 국가였다. 영어를 사용하는 워홀 국가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이렇게 5개 국가가 있다. 원래 유럽 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영국과 아일랜드 2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두 국가 모두 일정 조건을 충족한 대상자를 랜덤으로 추첨하여 승인서를 발급해준다. 나는 2년 체류를 허가하는 영국을 먼저 지원했으나 끝내 승인서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신청한 아일랜드는 단번에 승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일랜드와 나는 의외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흑맥주 기네스이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은 아일랜드 출신의 존 카니 감독이다.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싱 스트리트. 당시 즐겨 듣던 노래는 데미안 라이스의 캐논볼.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29년을 살았던 나는 항상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을 동경했었다. 자연은 나에게 생명력을 선사하고 인간의 거만함을 돌아보게 하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결정은 정말이지 나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서울 생활살이. 과연 나는 내 30대를 투자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찾아올 수 있을까?

그게 거창하다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간지러운 두려움을 안고 미지의 세상을 향한 문 앞에 서있었다. 내 인생에서 1년 따위 별거 아니라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토닥이며...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아일랜드 남쪽 코브(Cobh)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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