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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9. 2020

강아지 덕후가 고양이와 동거하며 배운 것

초보 집사 경험기가 준 교훈


나는 두 마리의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있다. 엄마 강아지 로라와 딸 강아지 루비이다. 우리 로라는 한 마리의 아기만 낳았다. 임신 초기에 3-4개의 아기집이 있었는데 임신 과정에서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하나 남은 아이가 루비였던 것이다. 애기가 많이 나오면 어떻게 다 키우지 고민하던 나는 그게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것을 알았다. 루비를 보자마자 이 꼬물이는 어디에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와 딸 개를 같이 키우기로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강아지를 키워왔다. 그래서 강아지에 대한 추억도 많다.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어릴 때는 동네의 떠돌이 견을 무작정 집으로 데리고 온 적도 있다. 그런데 그 개가 알고 보니 주인이 있는 개여서 엄마가 견주께 싹싹 빌어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우리 집에서 오직 나 만을 잘 따르는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개는 어느 날부터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에겐 입질을 하기도 했다. 당시 같이 살던 할머니는 그 개를 못마땅해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개장수가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아마도 20년 전 이야기다.) 할머니는 그때를 기회로 여기셨는지 개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께 맞서지 못하고 개가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기만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를 참지 못한 할머니께서 나보고 그 개를 부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개의 이름을 불러버렸다. 그리고 개는 나에게 왔다. 그렇게 개장수로 손으로 넘겨졌다. 이 일은 어린 시절 나에게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내 친구를 내 손으로 직접 떠나보냈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거의 한 달 간을 울며 지냈던 것 같다.


나는 강아지 덕후가 맞다. 학창 시절 사던 다이어리는 강아지 그림이 도배되어 있었고, 강아지 사진을 보고 종을 외우고 하는 것들이 취미 중 하나였으니ㅎㅎ 나는 강아지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게 무슨 기괴한 소리인지… 그들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고 강아지는 나에게 항상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더블린에서 내가 살던 집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고양이를 만난 첫 느낌은 어색함이었다. 나를 보기만 해도 쪼르르 달려오던 강아지들과 달리 내 곁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가가면 도망치기 바빴다. 강아지에게 시도하던 대화방식이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손끝 하나도 댈 수 없게 하던 도도한 고양이 펄디. 나는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펄디와 친해질 수 있는지.


도도한 냥이 펄디. 킹스우드 동네를 지배하는 고령의 카리스마 냥이



개나 고양이 상관없이 일단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는 예쁜 짓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주인집 내외가 긴 여행을 떠날 때면 누군가는 고정적으로 펄디에게 밥을 주어야 했는데, 내가 그 일을 맡았다. 그렇게 밥을 주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니 눈에 띄게 살가워진 것이다. 아침에는 강제 냐옹이 모닝콜이 울리기도 했다. 어찌나 밥을 달라고 조르는지,,, 내 발 밑에서 얌전히 기다리던 우리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펄디는 요구사항을 명확히 전달했다.


밥 줘라냥! 얼른 주라고!      /     나 밥 언제 먹어용?



또 하나 펄디를 재밌게 하는 것을 알아냈다. 바로 사냥놀이.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고양이는 도도한 멍청이라고. 오로지 가짜 먹잇감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고양이의 모습은 내가 두려워하던 그 고양이가 맞나 싶었다. 자신의 몸이 우당탕 부딪히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돌진만 있을 뿐. 그리고 불변의 진리 그들은 상자를 좋아한다. 그 바보스러움이 참 귀엽기도 하다.


하루는 펄디가 선물을 가져다준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쥐. 말로만 들어봤던 그 고양이의 보은을 내가 받은 것이다. 난감했다.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하는지.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대처 방법을 찾아봤다. 어떤 친절한 집사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나는 계속 고맙다 고맙다 이야기해줬다. 고마움의 눈빛을 받은 펄디는 마치 전투에 나서듯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은 나는 그 선물을 처리해야 했다. 고양이의 마음을 받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펄디가 준 선물.... 처리하는데 애를 먹었다ㅠ.ㅠ     /       맘에 들었냥? 또 잡아다 주겠당



고양이와 강아지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그 생김새부터 행동양식, 대화방법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그들과 친구가 되는 법은 같았다. 시간을 들여 그들을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원하는 바를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진심을 다하는 눈빛과 따뜻한 음성. 동물 친구들에게 배운 이 교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도 유익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쉽게 대화의 중요성을 잊곤 하니까. 





많이 친해진 펄디는 이렇게 내 무릎에서 자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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