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앞날에 축복을
나는 지금 사원 5명이 있는 IT스타트업에서 일한다.
원래는 서비스 기획 분야로 취직을 한 건데
어쩌다 보니 콘텐츠 에디터, 마케팅 일을 하고 있다.
나도 스타트업은 처음이다.
그전에는 아무리 작은 회사여도 업력이 있고 인원이 100여 명쯤 되는 곳에 있었으니 처음 이 회사에 왔을 때 신선하다 못해 어이없다는 생각까지 든 적이 있다.
코로나가 있기 전부터 재택근무가 기본 업무 방식이고
정해진 업무가 없이 알아서 기획하고 시행하고 협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대표님은 대뜸
"이력서도 안 봤어요. 그냥 와서 이야기 나눠보면 알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이미 몇 번의 직장생활을 하며 보통의 직장에서 생기는 일들에 환멸을 느낀 터라 여러 가지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왔고 내가 하는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라 생각해서
회사를 떠나 나만의 경력에 보탬이 될 거라고 믿었다.
작년에는 회사가 투자를 받은 금액이 있었다.
그래서 일의 자율성이 주어지고
나의 창의성을 시험해보는 일까지도
회사의 돈을 받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투자를 받기로 한 것들이
반려되고 미뤄지고 회사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 9월쯤 대표님은 일을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나도 내가 해온 프로젝트에 애정이 있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원래는 20명가량되던 사원이 5명으로 추려졌고 그전에 하지 않던 일도 하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그중에 유독 흔히 잡일이라고 하는 것들을 받게 되는 사원이 있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회사생활은 처음이라는 00 씨
재택근무 베이스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제일 열심히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표의 지시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소통창구가 되었다.
00 씨는 어제 퇴사 소식을 알려왔다.
이유는 우울증과 불안감 등으로 글자조차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솔직히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하면서 대표에 대한 불만으로 그의 말투를 꼽은 적이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그의 화법
항상 대화를 마치고 나면 기껏 끌어올렸던 의욕도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00 씨는 퇴사를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6개월 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저보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대표님과 통화하는 걸 듣더니 얼른 그만두라고 했어요."
나는 긴말을 하지 않아도 00 씨가 겪었을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절대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도 주변에서
"너 왜 그따위로밖에 못하냐. 생각은 하면서 사는 거냐. 실망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00 씨가 자신에게 맞는 길이 세상 어딘가에는 꼭 있다고 믿고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먼저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나의 마음이 상처 받는 일에 무뎌지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