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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y 27. 2022

공황장애

몸은 마음으로 말한다


 지난 3월 말에 코로나 확진을 받고 일주일간 격리에 들어갔다. 현재 세 식구가 사는 집에서 마지막 확진자가 되니 전염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마음은 편했다. 더구나 먼저 걸린 딸과 남편 때와는 달리 나는 확진 판정 이후 아무런 증상 없이 3일이 지나갔으니 코로나가 좀 만만히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4일째 되는 날부터 목구멍에 작은 가시들이 하나둘 돋아나는 듯하더니 자기 전엔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열은 없었지만 콧물, 기침에 몸살 기운이 묵직해지더니 결국 목과 코로 아플 수 있는 최대치를 기록하다가 딱 일주일 되는 날부터 좀 숨 쉴만해졌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격리기간 동안 쉬었던 일터로 출근했다. 근무지는 집 근처의 호두과자 가게였는데, 주 업무는 과자를 만드는 일과 포장해서 판매하는 일이 30분 단위로 교대로 이루어졌다. 2인 1조 작업방식이라 1명이 결근하게 되면 나머지 1명의 근무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날은 일주일간 애쓴 동료를 위해 내가 작업실에서 반죽을 맡겠다고 했다. 호두과자는 30개짜리 계란과 작은 버터, 그리고 10킬로짜리 믹스를 큰 통에 넣고 가운데 커다란 거품기를 작동시켜 반죽을 만드는데, 재료를 섞는 일은 기계가 하지만 골고루 섞을 계란물을 체에 밭쳐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이라든지, 완성된 반죽을 통에 나누는 일 같은 것은 사람의 몫이었다. 하필 그날은 주문이 많아서 뒷정리까지 하고 나니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2미터쯤 되는 과자 틀을 예열시키는 가스 불 냄새가 주방에 차 있어서였는지도 몰랐다. 주방에서 나와 판매대 앞에 서서 갈비뼈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보일만큼 크게 내쉬고 들이마셨다. 아까보다 좀 나은 것 같긴 해도 이 상태로 퇴근시간까지 버틸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났다.

옆에 있는 포장기계에서는 방금 구워진 호두과자가 얇은 유산지에 싸인 채 아래 놓인 바구니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따뜻한 호두과자 하나를 집어 커피 머신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 한 숨 돌릴 시간이었는데, 그날은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옆에서 호두과자를 포장하고 있던 매니저에게 말하고 나와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 안은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붐볐다. 난 대기실에서 앉아있는 것도 괴로워 수액실 침대에 누워있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켜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제 코로나 격리 끝나고 체력이 떨어진 건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요."

의사는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렇게 답답해하고 멀미 나는 증상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하며 이것저것 추가로 질문을 하더니, 아무래도 공황장애가 의심된다고 했다.

"공황이요? 별로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편인데요. 코로나 후유증 아닐까요?"

의사는 다음번에 같은 증상이 나타날 때 먹고 지켜보라면서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주었다. 나는 혈액검사를 하고 수액을 맞기 위해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내가 공황장애라니. 좀 전에 의사는 예전에 이런 일이 없었냐고 물었었다. 그때는 잘 떠오르지 않았었는데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살던 집의 절반 정도 되는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자다가 갑자기 천장이 내려앉는 듯해서 현관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복도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30분 안에 들어와 아침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작정 공원으로 달려갔다가 돌아왔다. 그제야 겨우 심장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수액이 들어오는 손등이 뻐근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침대 옆 창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대학 3학년 때 일이 떠올랐다. 함께 시위에 나갔던 친구와 후배가 전철역에서 검문에 걸려 구치소에 끌려간 후에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보름 만에 딸의 얼굴을 본 엄마가 나를 데리고 집 근처 단골 약국으로 갔는데 내 건강상태를 설명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가 머리가 노래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약사의 말도 엄마의 말도 들리지 않았고 심장이 뛰는 소리만 약국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기억은 좀 더 멀리 들어가 고등학교 때 실기시험 무대에서 피아노 앞에서 손가락이 굳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에피소드에서 멈췄다. 지루한 연습은 견딜 수 있었지만 3년 내내 무대 위에서의 공포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수액을 맞는 동안 내가 어떤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나 엘리베이터 안과 같은 특정한 공간에 들어가거나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공황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데, 아무래도 나는 견디기 힘든 것을 반드시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는 상황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압박하는 습관을 노력하는 것과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언젠가 읽었던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어떤 병이든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전해주고 가니, 이젠 마음을 돌보듯 몸을 살뜰히 살피겠다고 생각한다.




http://aladin.kr/p/dFS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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