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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r 05. 2022

나이 들어 좋은 점 2.

마음이 넓어진 건 아니지만....

사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갑자기 마음이 넓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쉰이 넘었지만 여전히 남을 의식하고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으면 화가 나고 잘 풀어지지도 않는다. 내 딴에는 삼사십 대에 비해 더 많은 것을 고려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가에게 지적을 당하면 나를 돌아보기보다 내가 다 한 '최선'을 떠올리며 마음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게 느껴진다. 그 마음은 돌아앉은 돌부처 같다.

 이삼십 대에는 쉰이 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살만큼 살았으니 고집 피울 일도 적지 않을까 싶었고, 질투나 집착 같은 건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쉰이 되어보니 여전히 싫고 좋은 것이 뚜렷하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은 정말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었을 땐 싫어도 투덜거리며 해내는 일이 많았던 반면 솔직히 지금은 싫은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는 일도 적어졌지만 예상치 못했던 칭찬을 받을 때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편협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편협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생각이나 도량이 좁고 너그럽지 못함'을 말하는데, 내가 지켜본 50세 이상들은 나를 포함해 대개가 편협해 보였다. 자신이 살아오고 경험한 것에 기반을 두고 판단했고 그 판단에 대한 확신도 강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집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한발 물러서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여유가 보일 때가 있는데, 그건 여기저기 따라붙는 병과 치료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세상 사는 법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굴던 사람들 대부분이 노안이 와서 스마트폰의 폰트를 키우거나 돋보기를 가지고 다녔고, 골다공증 약을 먹으며 골절사고를 걱정하거나 당뇨를 앓고 있었다.

 나 역시 체력이 확연히 약해지는걸 느끼면서 고집이 조금씩 누그러졌던 시기가 왔다.

 3년 전 정기 건강검진에서 난소종양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나는 정말 신경이 예민해있는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과 자주 부딪혔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으면 거기에 꽂혀 어떻게든 상대를 바꾸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처음 종양이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크기가 꽤 컸지만 폐경이 되면 자연스레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일 년이 지나도록 별 차도가 없자 담당 의사 선생님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른 고민들이 무게가 훅 낮아지면서 내 몸의 회복이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게 적용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의 삶에 분통 터져할 여유도 이유도 줄어들었고, 그제야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날이 지나가며 조금씩 화가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화가 가라앉고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지만 부끄러운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신기했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좋은 약이 개발된다 해도 몸이 늙고 체력이 약해지는 것을 완전히 막을 방법은 없다. 요즘은 병도 늙음도 모두 치료해야 할 질병이 되어버린 시대이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몸이 늙어가고 기운이 빠지는 건 생각보다 다행스러운 면이 많다.

 체력이 떨어지고 이런저런 병이 찾아오고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알아채고서야 지금껏 끼고 살았던 욕망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쉰 살이 넘었다고 마음이 넓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간다. 기억력과 순발력이 약해져서라고 해두자. 몸이 약해져 비로소 마음을 낮추게 되는 것, 이건 분명 나이 들어서 좋은 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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