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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19. 2022

오래된 집에서 잠든 겨울밤

시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서울 끝자락에 있는 작은 빌라인데 지은 지 오래되어서 해마다 겨울이면 많이 춥다. 외출했다가 따뜻한 집에 들어오면 안도감을 느끼다가 문득 부모님이 계시는 낡은 집을 떠올리면 걱정이 된다.

두 분 모두 오랜 세월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 보일러를 많이 켜는 대신  온풍기를 껐다 켰다 하며 집안의 온기를 유지하시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댁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서 자고 오는 날도 많았다. 우리 식구가 가는 날이면 어머니는 평소보다 보일러를 오래 켜 두셨고 커다란 온수 매트가 깔린 큰방을 자식들에게 내어주셨다. 그리고 두 분은 아버님이 신문을 읽고 글을 쓰시는 작은 방에 이불을 깔고 주무셨다.


식구들이 모두 저녁을 먹고 각기 거실과 큰방에서 쉬고 있을 때면, 어머니는 조용히 방에 들어와 화장대에 놓인 스킨과 로션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나가셨다. 그리고

저녁 세수가 끝나고 나면 티브이 연속극을 보면서 바구니에 담긴 화장품을 차곡차곡 얼굴에 바르시곤 했다.

 큰 방에 누워있으면 귀가 어두운 아버지의 청력에 맞추어놓은 티브이 소리가 닫힌 방문을 뚫고 내 귀에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즐기시는 분이고 아버지는 듣기를 즐기시는 분이다.

아버님은 귀가 어두워도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신다. 그는 나를 부를 때 '어미야'라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지칭할 땐 '수 미'라고 말한다. 큰 손녀 '수현이의 엄마'라는 뜻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집에서 '수 미'라는 정체성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다. 명절 때마다 제사를 지내고 며느리 역할을 해내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 와중에 그들이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하려고 애썼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있다. 


그래서 이 집에 오면 마음이 복잡해지곤 한다.

그들은 자식에게 헌신적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랑과 헌신은 딱 그 깊이만큼 나이 들어가는 우리 부부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

 두 분 다 팔순이 넘어가던 해인 작년엔 오랫동안 써던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화기를 바꾸셨는데, 새로운 기기 사용법을 가르치느라 남편은 이틀 저녁을 어머니 곁에서 개인 과외를 해야 했다. 그때는 마침 집안에 공사를 하느라 아이들은 자취방에, 우리 부부는 시댁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이 옆에서 이것저것 시범을 보이며 설명을 할 때 어머니는 몰라도 즐겁고, 모르는 걸 알게 되어도 즐거우신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옆에 한참 앉아있다 큰방으로 들어와 혼자 폰을 들고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회사에서 퇴근했지만 '아들'이라는 회사에 다시 출근한 것 같았다. 거실에서 하염없이 이어지는 모자의 말과 웃음소리와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깜박 잠이 든 사이 남편이 큰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방 안의 공기는 차지만 온수매트가 깔린 이불속은 따뜻했다. 피곤했던 그는 핸드폰을 잠깐 보다 불 좀 끄자고 했다.

 일어나 불을 끄고 다시 누우니 20년 넘게 한 자리에 걸려있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시곗바늘이 따박따박 1초씩 밀어낼 때마다 이 집이 낡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집에 수없이 드나들었던 우리가  늙어가는 소리도.


미워할 대상이 흐릿해졌다. 차라리 그게 편안하기도 했다가 다시 답답해지기도 했다. 시계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바뀔 때마다 몸을 뒤척였던 겨울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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