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남편이 출국하고 나서 3인 가족이 되었다가 지난달 큰 딸이 출국하면서 2인 가족이 되었다.
2022년 2월, 남편은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곳으로, 딸은 버스를 타고 가다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여기, 남편이 있는 곳보다는 많이 춥고 딸이 있는 곳보다는 훨씬 덜 추운 한국에서 나와 작은 딸, 그리고 강아지 오늘이가 살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한 시간 단위로 집을 나서는 식구들의 아침식사를 챙기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15분짜리 요가 동영상 한편 따라 할 짬도 낼 수가 없었다. 제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간절히 바랬었는데 이제 그 기억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남편과 큰딸이 한 달 간격으로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떠나고 나자 갑자기 집이 휑해 보였다. 네 식구가 살 때는 늘 한 사람은 편히 쉴 공간이 애매한 사이즈의 집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우리 집의 양대 스피커이자 마당발이어서 이들이 있을 때는 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거나 먹을 걸 찾는 소리가 집안에 뒤섞여 있었다. 심지어 큰딸은 수시로 친구들을 집안으로 불러와 함께 먹고 난 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빠진 우리 집은 마치 '피정의 집'이나 '템플스테이'가 된 것 같았다.
작은 딸과 나는 앞으로 한동안 이어질 이 고요가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우리는 둘만 남은 집에서 한시적 2인 가족 체제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제일 큰 과제는 큰딸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강아지 '오늘이'의 충격을 덜어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오늘이는 13년간 늘 붙어 지내던 '큰 언니'가 떠나자 양쪽 귀를 축 늘어뜨리고 자기 방석 위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 잘 먹지 않았던 사료는 그나마도 양이 반으로 줄었고 산책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마치 실연당한 사람처럼 오늘이에게서 모든 빛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작은 딸과 나는 '오늘이'에게 이 상황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설명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오늘 이를 번갈아 안고서 '큰 언니'가 몇 달 뒤면 다시 돌아온다고 수차례 말해주었지만 오늘이의 눈빛은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2인 가족 3일 차 되던 날, 그렇게 실의에 잠겨있던 오늘이나 접시에 닭고기 살을 담아주었더니 안겨있던 작은 언니의 가슴을 박차고 튕겨 나와 순식간에 고기를 먹어치우고서 빈 그릇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때 오늘이의 눈이 생기로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작은 딸과 나는, 오늘이에 대해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이에게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고 '큰언니'가 없어도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할 뭔가가 필요했다.
작은딸과 나는 아침 세리머니를 하기로 했다. 그것은 허기진 사랑과 식탐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퍼포먼스이자 2인 가족의 평화로운 아침식사를 위한 밑 작업이기도 했다. 아침에 오늘이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방에서 걸어 나오면 작은 딸과 나도 오늘 이를 가운데 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다리 사이로 머리를 들이미는 오늘이의 머리와 몸통을 마구 쓰다듬어 준 다음,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해주었다.
"오늘, 새로운 오늘이가 태어났어요. 방금 태어난 새늘이를 소개합니다!!!"
그러면 오늘이는 영문도 모른 채 머리와 꼬리를 흔들고 기침을 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박수소리에 고개를 천장으로 쳐들고 "고워워워~~~" 하면서 환호에 응답해주었다.
오늘이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양 기분이 업되어 간식을 넣어둔 찬장 앞에서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작은 딸과 나는 이때 얼른 일어나 우리가 먹을 아침밥을 챙겼다. 3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찬장에서 숯불 닭갈비 스틱을 하나 꺼내 오늘이에게 건넸다.
우리는 그날그날 입맛에 따라 구운 빵과 샐러드를 먹거나 구운 김을 양념장에 싸서 두부조림이나 시금치나물, 장조림 같은 반찬을 꺼내 천천히 먹었다. 오늘이나 제 방석에 앉아 기대했던 것보다 오래 질긴 검을 질겅거렸기 때문이다.
3월이 되면 일시적 2인 가족 체제도 막을 내린다.
가족도 하나의 생명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늙어가고 줄어들고 마침내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영원히 묶여 살아갈 것 같지만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그날이 그날 같지만 사실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언젠가 내게도 혼자 눈뜨면 아침이 올 것이다. 외로움을 미리 대비할 수는 없을 테고 시간이 흐른다고 익숙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을 살아가는 기술을 익히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