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 Feb 04. 2022

나이들어 좋은 점. 1

명절 대물림은 없다

 설날 아침 눈을 뜨니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올해는 남편과 큰딸이 해외에 나가있으니, 구정 설이라 해도 분주함 하나없이 조용하게 흘러갔다. 연말과 신정에도 모였던 터라 이번 연휴엔 명절 당일, 작은 아이와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드라이브 하듯 시댁을 다녀왔다. 평소에는 한시간도 넘게 걸렸던 거리인데 이른 아침 음악을 들으며 한산한 도로를 달리니 삼십 분도 안되어 시댁에 도착했다.

 몇 년 새 명절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워지다니 가끔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가장 좋은 점명절스트레스가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사나흘 되는 명절 연휴를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전쟁을 치르듯 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절대 끝나지 않는 영화를 보고있는 기분이 든다.


 트렁크에 아이들 짐과  양가에 드릴 선물을 바리바리 싣고서 시댁과 친정을 오갔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면 십년, 이십 년을 다시 준다해도 딱 잘라 마다하고 싶다.

대체 남편과 나는 그 오랜 세월을 왜 그렇게 효도전쟁을 하면서 지냈던 것일까.

 남편과는 달리 난 분명 결혼 전에는 효녀가 아니었는데, 결혼을 하고나서 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부모님이 너무 안되보였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남편이 하도 시댁을 열심히 챙기는 사람이라 며느리인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가볍지 않았고 자연히 나의 부모님께도 똑같이 챙겨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외국에 나가면 모든 사람은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결혼만 하면 저절로 효자효녀가 되니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이십년 가까이 명절 전쟁을 치르다 몇 년전 친정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고, 시어머니께서도 이제 일하기 귀찮으시다며 일년에 너댓번씩 지내던 제사를 모두 절에다 맡기신지 삼년이 되었다.

명절이 되어도 뵈러갈 엄마아빠가 안계시는 것이 너무 허전하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집에서 명절 스트레스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제 설에 시댁에 가는 건 겨울 나들이가는 기분이다.

"엄마. 어릴때 엄마가 할머니집에서 외갓집 갈시간이라고 얼른 짐챙기라고 할때 조금만 더있다가 가자고 한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거 있지?"

난 작은아이의 말을 듣고 너무 웃겨서 정말 엄마가 그런 말을 했냐고 다시 확인했다.

"응, 그땐 내가 어려서 뭘 몰랐어.네 살인데 뭘 알았겠어.'

우린 둘 다 한참 깔깔거렸다. 엄마와 딸은 가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참 기쁘다.


만약 내 딸들이 결혼하게 된다면 친정과 시댁의 무게가 같은 삶을 살고, 부모의 눈치보다 자기의 마음을 더 보살피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쉰 살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