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에 전화영어가 시작된다. 이번 회차 주제는 "당신은 벼락치기 파냐, 미리 준비 파냐"였다.
오늘 담당 강사가 "Lucy. Are you always in a hurry? Or do you prefer to do things earlier?"이라고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비해 어휘와 순발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는 강사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다. '미리 준비하고 싶지만 맘같이 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진실이었지만 정작 " I prefer to prepare early. but... I cannot...."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학교 때 외웠던 숙어 "not only A but also B'가 떠오름과 동시에 'not always'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but i don't always do that."이라고 답하고 나니 뿌듯해졌다. not always가 아니었다면 나는 '미리준비파'와 '벼락치기파' 둘 중에 하나가 되었을 거다.
실제로 나는 '양지를 지향하지만 음지에서 일하는' 과거 안기부 정보요원처럼, 미리 준비하는 사람을 지향하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거나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는 데 더 능숙한 사람이다. 그래도 결코 닥쳐서 하는 걸 선호하지는 않기 때문에 제대로 대답하고 싶었던 것이다.
A냐 B냐를 묻는 질문을 받으면 가급적 예외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탕수육은 찍먹이 제맛이지만 튀김옷이 눅눅할 땐 차라리 부먹이 낫다고 말하면 속이 후련하다. 취향은 섬세한 언어가 뒷받침되어야 지켜질 수 있다. 또 주의 깊은 말은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질문을 지겹게 듣고 자랐다. 질문을 받고 바로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둘 중에 진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누굴 더 좋아한다고 대답하든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쁜 질문이란 그런 거다. 실체에 대한 정보를 알기보다 상대의 취향을 제입맛대로 단순화시키려는 질문. 그런 질문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 섬세하고 정확한 자기의 언어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양자택일에 갇히면 실체와 멀어진다. 다양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 또 남을 향해 그렇게 물을 줄 아는 능력이 있으면 좀 더 자기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