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참 잘 쉬었다. 일요일엔 잠도 푹 잤고 식구들이 다 나간 집에서 혼자 밥도 맛있게 해먹었다. 사실 밥이래야 별건 없었다. 보리쌀과 차조를 많이 넣고 지은 밥에 북엇국을 끓여 전날 준비해둔 반찬을 곁들였을 뿐이다. 겨울이면 우리집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반찬은 곱창김과 달래장이다. 거친 원초를 판판하게 펴서 말린 곱창김을 센불에 날리듯 구운 다음,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 플라스틱 통안에 잔뜩 담아두고서 끼니때 마다 꺼내 먹는다. 흰쌀밥이 제격이긴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지어먹는 잡곡밥도 나름대로 구수한 맛이 있다. 입안에 들어간 조는 부드러운 쌀 사이에서 오들오들 돌아다니며 씹힐 때 마다 제법 존재감이 있다. 쌀보다 덜 달고 보리보다 구수하다. 조를 넣은 밥을 먹다가 다시 쌀밥을 먹으면 대번 밍밍하게 느껴진다.
촉촉한 조밥을 구운 김에 싸서 달래장을 얹어먹었더니 고기가 없어도 하나도 허전하지 않았다. 반찬이라고는 김장통에서 꺼낸 무김치와 꽈리고추 조림이었다.
꽈리고추 조림이 평소와 좀 다르긴 했다. 몇일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국멸치가 도착했는데 적당한 크기에 살집이 많았다. 멸치똥을 떼어내고 몸통을 반으로 갈라 다듬어 놓은걸 가지고 꽈리고추와 조렸는데, 물을 좀 넉넉히 붓고 흑설탕으로 단 맛을 냈더니 꽈리고추는 흐물흐물 부드럽고 실한 멸치는 까맣게 간장물이 들어 생선조림맛이 났다. 김으로 싼 밥과 김치와 고추조림을 몇번이고 돌려먹다 미지근하게 식은 북엇국을 훌훌 마시는 것으로 점심을 끝냈다. 아, 밥은 이렇게 쉽게 근심을 사라지게 한다.
어릴 때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병아리 장수들이 와서 학교 정문앞에 자리를 펼쳤다. 우리는 곧장 집에 가지않고 병아리들이 들어있는 박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도 쉬지않고 '삐약삐약' 우는 새끼들을 한참 구경했다. 그러다 어떤 아이들이 병아리를 사서 조심스레 손바닥에 얹어 일어서면 병아리 장수는 조가 담긴 비닐봉투를 얹어주며 '이것만 먹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조는 원래 병아리들만 먹는 건 줄 알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역사 시간에 조, 수수 농사를 지은 신석기시대 유적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쌀보다 조가 더 오래된 식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갈수록 식사가 단순해져간다. 꼭 차리기 귀찮아서라기 보다 어느덧 끼니가 되는 재료 자체의 맛을 알게되어서 인것 같다. 쌀과 보리와 수수의 맛, 곱창 김과 파래김의 맛, 달래나 냉이같은 나물의 향, 북엇국에 친 소금의 맛 같은 게 다 혀에 말을 건다. 밥을 먹고나면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