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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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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13. 2023

편파적인 사랑을 위한 도미조림


이번 구정 설에 남편과 가까운 분이 갖가지 생선이 들어있는 선물세트를 보내주셨다. 여수 바다에서 잡자마자 급랭 시킨 도미와 민어조기, 푸른 삼치와 돌문어가 배 상자만 한 스티로플 박스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생선보다 고기를 즐기는 식구들 입맛 때문에 문어만 먼저 먹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냉동실 서랍에 들어있었다.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만 혼자서 먹자고 팔뚝만 한 생선을 해동시켜 요리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시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치과 치료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하신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앞니 세 개를 동시에 건드려 김치도 못 씹을 정도라니 지금 생선조림을 해드리면 좋겠다 싶었다. 냉동실을 열고 도미와 손질된 삼치를 꺼냈다. 도미는 친정이나 시댁 어느 쪽 제사에서도 쓴 적이 없고 그렇다고 평소에 밥상에 올리던 생선도 아니라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실 이 생선이 도미라는 것도 긴가민가해서 네이버 스마트렌즈로 찍은 다음 검색해 보고야 알았다.  그리고 바로 유튜브 검색창에 '도미 조림'을 쳤더니 여러 가지 레시피들이 주르르 올라왔다. 그중에서 맘에 들었던 건 도미를 살짝 튀겨 소스에 조리는 레시피였다.

우선 해동시킨 도미에 칼집을 넣고 소주와 소금을 뿌린 다음 밑간이 배는 동안 조림 소스를 끓였다. 간장과 액젓에 고추청과 매실청으로 단맛을 내고 베트남 건고추와 굵게 찧은 마늘을 듬뿍. 생선조림 소스는 평소 내 방식대로 하되 영상을 참고해 화이트와인을 반컵 써보았다. 냄비에 반달 모양으로 썬 무를 깔고 소스를 부어 천천히 끓였다. 달큼한 간장냄새가 퍼질 때쯤 밑간이 밴 도미 위에 녹말가루를 뿌려 골고루 발라주었다. 칼집 구석구석까지 녹말을 묻혀준 다음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생선을 집어넣었다. 뜨거운 기름에 닿자마자 녹말옷이 파삭하게 부풀면서 칼집 넣은 생선살이 뽀얗게 익어갔다. 앞뒤로 익힌 도미를 뒤지개로 들어 올려 바로 옆 화구에서 끓고 있는 소스 팬에 넣었더니 '치지직' 소리가 나고 주방에는 짭조름하고 구수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조림소스가 생선살에 배도록 한소끔 익힌 다음 뚜껑을 열어 대파와 미나리를 툭툭 뿌려주었더니 그 향이 오늘 도미조림의 마침표를 찍었다.


남편과 나는 스텐냄비 째로 차에 싣고 가기로 하고 어제  만들어두었던 깻잎 조림과 북어볶음 그리고 두툼하게 썬 목살까지 빈 김치통 두 개에 차곡차곡 나눠 담고 시댁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전 도심의 교통흐름은 부드럽고 날씨도 많이 풀리고 있었다.

남편은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배고프다며 목살을 꺼내 구웠다. 나는 가져간 반찬을 덜어 상을 차렸고 어머니는 생선조림을 맛보셨다. 그리고 정말 맛있다며 밥을 반 공기쯤 비우셨다. 아버님은 '엄마가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하셨는데 오랜만에 밥 한 공기를 비웠다'면서 좋아하셨다. 아버님에겐 어머님이 드신 밥 반 공기가 한 공기로 보일만큼 다행스러우신 것 같았다.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수다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후식으로 구정 때 다니엘이 선물한 초콜릿을 하나 꺼내 드시면서 말씀하셨다.


 "그이가 살집은 별로 없지만
사람은 참 똑똑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우리 수를 좋아하지.
복이 없는 사람 같으면
우리 수 같은 사람을 만났겠냐.
근데 그이를 뭐라고 부를까.
그냥 '김 군'이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김 씨가 아니어서 김 군은 될 수 없다고 '댄'이나 '엘'이라고 부르시라고 권했더니 어머니는 너희 가고 나면 다 잊어버려서 소용없다고 그냥 '김 군'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다니엘'은 똑똑하고 복 많은 '김 군'이 되었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 넷이지만 연세에 비해 무척 개방적이시다. 수의 남자친구가 외국인이라고 처음 말씀드렸을 때부터 전혀 거부감이 없으셨고 오히려 전쟁 없는 나라에 가서 걱정 없이 살게 되면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은 '그네들은 여기 남자들처럼 가부장적이지도 않고 여자를 얼마나 아껴주는데'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평소 어머니의 '말'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늘 편파적으로 자식을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하신다.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며느리인 나나 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펴지고 그 말과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니까 '똑똑하고 복이 많지만 쓸데없는 욕심은 절대 안 부리는' 사람이 되어 끝내는 이 세상의 복을 다 수렴하는, 그러니까 그냥 나로 살아갈 뿐인데 세상의 어지간한 복들이 저절로 찾아오고야 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한동안은 그런 말들이 과한 칭찬으로만 들려 불편했는데 살아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막막하고 힘들었을 때 어머님의 목소리가 떠올랐고 그 말을 듣기 위해 시댁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걱정하지 말라며 너희는 틀림없이 잘 살 거라며 말해주셨다. 나는 그렇게 점점 과한 칭찬도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온 것 같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신이 나서 요리를 한다. 지금껏 가족들의 식사를 차리면서 내가 그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주는 식구들이야말로 요리를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칭찬을 건네는 일,  글을 쓰는 것이 애를 써서 하는 중요한 일이라면 잘 먹어주고 잘 받아주고 잘 읽어주는 사람도 똑같이 애써서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나의 도미조림을 드시고 기운을 회복하셔서 그 든든하고 편파적인 사랑을 계속 퍼부어주시기를 바라며 오늘이가 기다리는 조용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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