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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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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Oct 18. 2023

'슬로 브레드' 입문기

이제 집빵을 먹어볼까?

이번 주부터 '천연 발효빵'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천연 발효종을 써서 천천히 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동안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치아바타 같은 비교적 난도가 낮은 빵에 도전해 보았지만 그리 만족할 만한 맛은 아니었다. 오랜 살림 구력에 빵도 대충 따라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내가 원하는 수준의 맛에 확연히 못 미치니 계속 연습할 동기가 사라졌다.

사실 유튜브에도 훌륭한 선생님은 차고 넘쳤고 다양한 난이도의 레시피들도 많았다. 하지만 몇 번 따라 해보고 나서 제대로 빵을 만들려면 반드시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 이유는 집에서 만든 빵이 맛있으려면 발효시간을 넉넉히 잡고 충분히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실제과정의 10분의 1로 편집한 영상을 건너뛰며 중요한 부분만 보고 따라 하면서 발효 시간과 온도 같은 필수 요소는 '내 마음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이 잘되거나 망쳤거나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늘 엄마에게 '빵 먹고 싶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동네 빵집에서 살 수 있는 빵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단순했지만, 등굣길에 빵집 앞을 지나갈 때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빵을 줄 때는 늘 뭔가를 '감수'하고 먹여야 했다. 천연버터 대신 가공버터나 팜유가 쓰이고 제빵개량제나 낯선 식품첨가물이 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먹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첨가물 보다 더 해로운 건 방부제와 표백제까지 들어간 밀가루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빵을 '끊을 수' 없었다.

십여 년 전 영등포구의 한 골목에 'Bob's Bread'라는 작은 빵가게가 있었다. 한국인 부인과 사는 미국인 제빵사가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빵을 만들었는데, 지금껏 먹어온 빵과는 너무 다른 맛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구운 빵들은 겉은 누룽지처럼 구수하고 속살은 살짝 질깃하면서 촉촉했다. 특히 천연발효종 특유의 시큼한 맛은 씹을수록 침샘을 자극했고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했다.

그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서울에 '천연발효빵' 붐을 일으켰고 매장도 확장해나가는가 싶었는데, '밥 아저씨'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미국으로 영구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Bob's Bread'가 없어지면서 그나마 간간히 맛보던 '슬로 브레드'는 식탁에서 아예 사라지고 또다시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2년 사이 국내 제빵 1위 기업의 제조공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사건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 사실 내가 오랫동안 '파리***'를 이용한 건 '가성비' 때문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맛으로 만족을 주는 빵을 먹으며 손해 보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판매되고 있는 천연발효빵들은 '천연발효종'으로 제대로 발효한 빵이 아니라 '드라이 이스트' 양을 조금 줄인 공장식 빵일 뿐인데 가격은 천연발효빵 수준이다. 이게 진정한 가성비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어떤 제품이든 싸게, 많이 만들어서 빨리 이익을 내려면 필요한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빵에서는 발효과정이 생략되었고, 공장에서는 여전히 끼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생략된 채 가동되고 있다.


나이 들어 갈수록, 머리로는 바꾸어야 하는 걸 알지만 일상은 늘 그대로 살아온 시간들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그것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겠다. 빵맛도, 환경도, 우리들의 안녕도 두루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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