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수도원에서 이틀째 되는 날. 종소리에 몸을 일으켜 숙소에서 나오니 희부연 하늘과 차가운 공기가 신선했다. 수도원 정원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측백 같은 사철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인지 좋은 향이 난다.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과 1층으로 내려왔다. 굽지 않은 말랑한 식빵에 얇게 썬 버터와 무화과잼, 분도 소시지와 과일, 그리고 인근 목장에서 받아와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아침 메뉴였다.
새벽 미사 후 먹는 아침 식사, 빵과 분도소세지
식사를 마치고 칠곡에 있는 '가실 성당'을 다녀오려고 일찍 나섰다. 얼마 전 여행전문가인 친구로부터 가실성당이 우리나라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지라고 들었는데, 성당 앞에 도착하니 정말 순례지 인증 스탬프 함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지금의 '가실성당'은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사인 '빅토르 루이 푸아넬' 신부가 설계했다고 한다. 푸아넬 신부는 1919 년에 명동성당을, 1923년에 가실 성당을 완공하고 2년 뒤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뒷산 오솔길을 따라 꾸며놓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데 산 아래 왼편으로 낙동강이 햇빛을 받으며 흐르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배신으로 로마왕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 14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묵상하는 길이다. 이천 여 년 전 한 젊은이가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잠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고민과 갈등을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다.
성당의 본체는 십자가 모형을 본뜬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핝낮인데도 성당 내부는 어두웠고 소박한 스테인글라스로 들어오는 푸른빛이 빈 의자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다시 왜관으로 들어가는 버스 도착시간보다 30분이나 여유가 있어서 성당 옆 카페로 들어갔다. 낙동강이 길게 보이는 자리에서 청귤에이드를 한 잔 마시고 나오던 중이었는데 카페 주인이 따라 나오며 동네자랑하는 걸 듣다가 그만 버스를 놓쳐버렸다. 낭패였다. 별것도 아닌 걸 듣고 있다가 버스를 놓친 게 너무 속상했다. 다음 버스는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왜 버스시간이 촉박해지는 걸 알면서도 그의 말을 끊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남들의 입장을 살피고 있는 건 대체 무슨 심리일까.
화도 나고 다리에 힘도 빠져 발목이 자꾸 꺾이기 시작했다. 길도 모르는데 네이버 지도만 보고 언제까지 걸을 수는 없다 싶어 조금 전에 지나쳤던 칠곡 주유소로 되돌아갔다.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부르고 있는 나를 보고 대형트럭 주유를 마친 남자분이 달려왔다. 그는 내 사정을 듣고는 바로 왜관택시로 전화를 걸어 택시를 호출해 주고 한 십 분쯤 기다리면 올 거라고 하며 자판기 커피까지 뽑아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분이었다.
호출한 택시를 타고 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급하게 나오느라 다 마신 커피 컵을 그대로 탁자에 두고 온 게 떠올랐다. 실컷 도움받고서 뒤정리도 제대로 못하게 오다니.
이번 여행에서 만난 대구 사람들은 대체로 투박하면서도 인정이 많았다. 우리 부모님도 대구분이시니 그 정서를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어린 시절 잠깐 살았던 것뿐이라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는 처음이다. 서대구터미널에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 지도를 볼 수가 없었는데 근처에 낚시 가게를 겸하는 작은 마트가 있어 들어가 부탁드렸더니 휴대폰을 받아 직접 충전을 해주셨던 일, 가실성당 가는 버스에서 졸고 있던 나를 깨워 성당 앞이라며 멈춰주신 기사분, 또 칠곡오일뱅크 사장님.
성당에 도착하니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날씨는 서울에 비하면 너무나 포근했다. 숙소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