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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Apr 23. 2024

톱질하는 할머니,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다

조각가 <김윤신 Kim Yun Shin>전

예술가의 진짜 작품은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지난 토요일(4월 20일)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가 막을 올렸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hners are everywhere)"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총 36팀의 한국 작가들이 참여해 높아진 한국 현대미술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올해 구순을 맞이한 조각가 김윤신 씨가 유독 주목을 받고 있다.


조각가 김윤신은 1935년 생으로 홍익대 조소과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한 후 국내 대학에서 1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해 온 원로작가이다. 다만 오랫동안 해에 해외에서 활동해 온 탓에 작업경력에 해 국내 미술계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조각가 김윤신은 1984년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40년 동안 활동해오고 있는데, 늘 작품의 소재에 목말라하던 그에게, 광활한 남미 대륙에 펼쳐진 풍부한 수목들은 마르지 않는 창작의 영감을 일으키고 지지해 주었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하루 온종일 나무와 대화하며 작업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무의 말을 들을 수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작가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아름드리나무기둥이 포개져있는 작업장에서 온종일 향을 맡고 결을 쓰다듬으며 나무와 교감을 나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낸 후 전기톱을 들고 단단한 나무에 틈을 내고 형태를 만들어낸다.

'따로 존재하던 둘이 합쳐져 하나가 되고, 둘로 나뉘었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된다'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시리즈는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온 이런 작업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자 그의 예술철학이기도 하다.

붉은 알가로보(algarrovo) 나무로 만든 '합이합일(合二合一)'시리즈에 이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기원 쌓기' 연작이다. 마치 간절한 소원을 빌며 하나씩 쌓아 올린 돌탑을 연상시키는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아픈 가족사가 배어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작가의 오빠가 행방불명되었는데 어머니는 외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날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드렸다고 한다. 그 모습이 작가의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가 '기원 쌓기'로 구체화된 것이다. 단순한 구조의 나무 조각을 물끄러미 보다가 불현듯 누구에게도 꺼내놓기 힘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는, 단단한 나무속에 아로새겨진 작가의 삶과 그것을 그릇처럼 담아 비춰주는 자연의 힘 덕분이 아닐까.


평균수명 백세를 예측하며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시대지만, 아무리 수명이 연장되었다한들 구순이라는 나이에 이르는 일은 흔치 않다. 또 그 나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타인의 돌봄에 의지해 살아간다.

올해 구순이 된 김윤신 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받았다는 뉴스가 크게 회자되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경이로운 것은 '내 다음 목표는 회화조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라고 천명하며 지극한 육체노동을 날마다 수행하는 그의 체력과 용기이다.


"쉼 없이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테크닉이 생겨서 톱질을 너무 익숙하게 할 수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 이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어떤 정신으로 뭐를 하느냐가 중요하지, 무거운 톱 들고 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고 있어요. 끝까지 그렇게 해야겠죠."

<이루어지다> 2018.

유례없이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거나 과연 이 일을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가늠해 보는 일에 아주 익숙하다. 그리고 그 잣대에 비추어 계속하거나 멈추는 데도 말이다.

나는 가끔 ‘눈도 침침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뭐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질문에 궁한 답변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매일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일들로 채우겠다는 결심과 실천만으로도 삶은 충분하다는 사실을 구순의 조각가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 사진출처 <국제갤러리> 유튜브

https://youtu.be/naC8 HuXllCw? si=WBhk1 JLIiuRbZAaG

※ 이 글에 게재된 표지 사진과 작가 사진은 국제갤러리의 유튜브 영상 <Studio Visit-Kim Yun Shin>에서 가져왔습니다.(작품 사진 제외)


김윤신 전

일시: 2024. 3.19~4.28

 (10:00~18:00, 월 휴무)

장소: 국제갤러리 (3호선 안국역 2번 츨구 8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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