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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12. 2020

02.

데리야끼 치킨과 율란

 

 새벽 6시 20분. 

 이렇게 이른 시각의 알람이 참으로 오랜만이라 눈은 떴지만 몸은 무겁다. 10분 뒤 다시 울리는 알람을 끄고 나와 주방 불을 켠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야.’ 

 하는 생각도 잠시, 일단 요리를 시작하니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손질해둔 닭 가슴살과 맛간장으로 만들어둔 데리야끼 소스를 꺼낸 다음, 달걀 삶을 물을 올린다.   

 습관처럼 라디오를 켰다. 자주 듣던 채널의 익숙한 디제이의 목소리. 비로소 방송을 하는 시간대에 맞춰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비행 목적지에 도착해 호텔 방문이 닫히는 순간, 한국어로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제일 먼저 켜고는 했었다. 매 번 다른 낯선 구조와 냄새의 호텔 방에서 모종의 안정감과 편안함을 만드는 그녀만의 방법이었다. 

 이른 오전에 어울리는 적당히 차분하면서도 에너지는 있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 리듬을 타고 기름 두른 뜨거운 팬에 닭고기가 지글지글 박자를 맞춘다. 소스를 끼얹어 간이 잘 배도록 자박자박 약한 불로 낮췄다. 그 사이 7분으로 맞춰 놓은 타이머가 울렸다. 얼른 찬 물에 달걀을 담가 노른자가 너무 익지 않도록 손을 분주하게 놀리고, 미리 삶아 놓은 감자는 버터에 한 번 더 굴려 향긋함을 더했다.       


 6시 52분. 

 지훈이 일어나 오 분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이야, 누나 못 일어날 것 같아서 사실은 기대 안 했는데.”     

 한 마디 던지면서 지훈은 로션을 착착, 얼굴을 때리듯이 바른다.      

 “이런 누나 나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들, 오늘 든든하겠는데?”     

 이리저리 주방을 뛰어다니는 예슬을 보며 아버지도 맛있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허허 웃으신다. 

 "아 맞다, 뭐 좀 먹고 나가야지? 도시락 하나가 은근히 어렵네, 이거. 잠시만요, 아빠!"

 예슬은 냉동실에서 급하게 모시떡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던져 넣었다.  냉장고를 뒤적뒤적, 사과 한 알과 두유 두 팩을 꺼내 식탁에 올리고 곧바로 도시락을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도시락 합의 윗칸에는 정성스레 만든 율란이 차지했다. 가을을 맞은 커다란 알밤을 시장에서 사온 터, 꿀에 계피가루를 넣고 밤 모양을 만든 후식이다.


아버지와 지훈이 7시 25분에 나란히 출근하고 예슬은 한 숨 돌리는데, 

그 사이 어머니도 일어나 준비를 하시다가 부엌을 힐끔 보셨다.     

 “도시락을 백 개쯤 싸기라도 한 거야?”      

그제야 엉망이 된 주방을 둘러보니 예슬도 웃음이 터진다.      

 “그러게. 도시락이 이렇게 손 많이 갈 줄이야. 엄마는 어떻게 매일 우리 도시락을 쌌대?”      

 급식 의무화는 예슬이 중학교에 가서야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후 수업이 있던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일도 하시면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챙겨주셨던 어머니의 수고를 알았으면서도 이제야 몸소 느낀다.     

 “나중에 네 애 낳아봐, 항상 더 못 해주는 게 아쉽고 생각나는 법인걸.”        

       



 “회사 사람들이, 여자 친구가 아니고 누나가? 친누나가 싸줬다고요? 몇 번을 묻더라니까.”     

 새콤하게 잘 익은 묵은지를 넣은 고등어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던 예슬을 향해 퇴근한 지훈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사실 예슬은 도시락이 어땠는지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해주고 나서 생색내는 것 같아 먼저 물어보지 않고 있었을 뿐, 내심 뿌듯하다.

 “다행이네. 아, 아니지, 여자 친구가 했었어야 더 좋은 설정인 건가?”     

 싹싹한 면이 조금 없는 지훈의 여자 친구 소정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절대 아니었다고, 예슬은 덧붙여 말했다.      

 “아, 뭐야. 벌써 시누이 역할하는 건가? 결혼하면 적당히 해주십시오, 누님.”

 “네 누나만 한 시누이가 어디 있게? 이야, 그나저나 오늘 고등어찌개 제대로네, 비린내 하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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