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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13. 2020

03.

매운 어묵김밥

 “비행기 타고 있을 때 선을 몇 번 더 잡아줄 걸 그랬지.”     

 농담 반 진담 반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는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며 타박하신다.‘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어제 만난 박 부장이 그러더라니까.’라고 아버지는 급히 덧붙이셨다.     

 “예슬아, 아빠 말 흘려들어라, 엄마는 너 빨리 결혼 안 해도 돼. 아니, 좋은 사람 없으면 안 해도 되고.”     

 예슬은 가볍게 웃기만 하며 구운 김을 김발 위에 올린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참기름과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해서 김 위에 가볍게 편다. 어느새 고소한 냄새가 집안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전날 저녁에 고춧가루와 멸치액젓으로 볶아놓은 매운 어묵, 우엉과 단무지, 볶은 당근을 차례차례, 가지런히 정성스럽게 올렸다.


 해외에서 일할 때는 아무래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언젠가 귀국하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터. 한국 들어오면 소개팅이든 선이든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지인이 여럿이었다. 조급한 마음도 없었거니와 사실 다가오는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세기로 이동한 후로는 오히려 시답잖은 남자들을 거절하는데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을 만났을 때도, 연애 같지 않은 장거리 연애에 지쳐 이별을 고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금은, 사실상 무직인 그녀에게 ‘좋은 선 자리’가 예전만큼 들어오질 않는다.     

 “아빠, 나이 서른 하나가 많은 시대 아니잖아요. 우리 회사에 미혼인 여자 선배들이 많아요.”     

 지훈이 은근슬쩍 예슬을 편들듯 말하며 김밥 하나를 집어먹는다.

 그 소리에 아버지는 안 될 소리,      

 “그래 몸 먼저 추슬러야지. 그래도 때 되면 결혼은 하는 게 인간 도리이자 섭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엄마를 뒤로하고 지훈이 출근길에 나선다.     

 “누나, 김밥 매콤한 게 내 입맛에 딱이다. 아빠, 누나 시집 빨리 가면 이런 거 못 얻어먹어요. 다녀오겠습니다!”          


 편치만은 않은 오전을 치른 것 같은 예슬은 고등학교 친구 정은이를 보러 가는 길이다.  정은은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과 반대로 서른도 되기 전에 결혼하더니, 곧바로 아이를 입양했다. 파견 기자로 일하다가 캄보디아 아이들을 만난 그녀는 눈에 밟히던 아이 하나를 데려온 것.     

 “미안, 오랜만에 브런치라도 해야 되는 건데, 요새 가만있지를 않아, 우리 승우.”     

 현관을 열며 사과부터 하는 정은은 여전히 예쁜 얼굴이나, 지친 기색은 숨길 수 없다. 친구가 온다기에 집 청소를 급히 한 것임에 틀림없다. 되는대로 일단 집어넣은 것 같은 책들 사이에서‘기초 캄보디아어’ 책이 슬쩍 보인다.      

 “에이, 요새 브런치 별것도 없는데 비싸기만 하고.”     

 두 살배기 정은의 아들 승우는 예슬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가방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수저를 꺼내면서 정은은 랩이라도 하듯이 아침부터 있었던 아들 승우의 일과를 속사포로 쏟아놓는다.      

 “너 말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니. 숨 좀 돌려라.”     

 정은이 여태 한 말의 반은 알아들었나 싶은 예슬은, 얇게 부친 노란 지단에 볶음밥을 동그르르 말아 만든 작은 김밥을 승우 입에 넣어준다. 아이 먹이기 위해 따로 만든 김밥. 야물 지게 받아먹은 승우는 오물오물 다 씹기도 전에 손을 뻗어 더 달라는 시늉을 한다.     

 “어머, 김밥을 어쩜 이리 예쁘게도 말았어!”

 “얘, 앉아서 먹어, 앉아서.”     

 그 사이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면서 김밥을 하나 집어먹는 정은이한테 자꾸 미안해지는 예슬.     

 “어어, 다했어. 근데, 나 이렇게 불평해도 솔직히, 일 안 하는 거 편해. 가끔 미친 듯이 기사 쓰는 게 그립기는 해도. 육아? 힘들지. 내가 애를 잘 키우고 있는 게 맞나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리를 콩콩 쥐어박아. 그래도 너 알지, 나 회사 다닐 때 스트레스 얼마나 받았었는지? 위경련 달고 살았잖아.”

 “그렇지, 나도 비행할 때 수면유도제가 필수품이었던 것처럼.”

 “젊음이야 좋았지. 그때는 나라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열의로 가득 차서. 밤새 취재하고 기사 쓰느라 주말 없었어도 한창일 때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정이 막 샘솟았는데.”

 “기자라는 직업뿐이겠어? 나도 비행 시작했을 때 얼마나 신났다고.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 크크”

 “맞아. 너 어디 가면 매번 사진 찍어 보내더니, 2, 3년 지나니까 애가 살아는 있는 건지 겨우 생존신고 수준이었잖아.”

 “삼십 대 되니까 회복 수준이 떨어지잖아, 푸흡. 자정에 비행하러 갈 때는 거의 좀비 수준.”

 “매번 다른 시간에 출근이라니, 난 아직도 너 대단해. 휴, 그때는 기사를 잘 쓰든 못 쓰든 칭찬보다 욕을 더 많이 먹은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의욕도 꺾이고. 근데 우리 승우는, 백 프로는 아니어도 내가 하는 만큼 변화가 있고 어떻게 크는지 보이니까 위로가 돼. 어떤 성취감도 있다고 해야 되나? 그저 눈만 보고 있어도 위로가 될 때도 있고. 얘를 데려온 건 축복이야.”

 “대단한 건 너지. 입양이, 육아가 말이 쉽지 너처럼 키우는 게 흔하겠니. 그만큼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았다는 반증인가?”     

 승우는 기저귀가 불편해졌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들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간 정은을 뒤로하고 예슬은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정작 예슬 자신은 결혼을 원하는지, 아이를 원하는지, 일은 계속하고 싶은지조차도 알 수가 없다. 그 무엇도, 다 자신이 없다. 이 그릇처럼, 수세미로 닦으면 말끔해지는 게 사람 속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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