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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Nov 17. 2020

요리 명상이 필요하다면, 양파수프

프렌치 어니언수프


감자와 더불어 유럽에 아주 흔한 채소라 하면 바로 양파다.
해서 여러 세기 동안 배고픈 이들의 식재료로 빠질 수 없던 고마운 양식이기도 하다.
 
18세기, 발명가인 니콜라 아페르는 샹파뉴 호텔에서 견습을 하던 시절이 있었단다.
이 폼모도르 호텔은 루이 15세를 사위로 둔 폴란드의 왕 스타니슬라스 레진스키가 자주 묵었던 호텔이다.
하루는 이 곳에서 양파 수프를 먹고 반해서 딸과 사위를 곧장 보러가지 않고 더 머물면서 요리를 봤단다.
이를 본 니콜라는 자신의 요리책에 이 수프 레시피를 실으며 ‘스타니슬라스 양파수프'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사위 루이 15세에게도 이를 해주었다는데, 거기까지는 진실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주 서민적인 양파가 왕실에서 대접받는 요리가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양파수프가 오늘만큼 흔해진 것은 많은 프랑스 음식의 전파 역사처럼 미국인의 영향이다. 1960년대 파리에서 이 수프를 맛본 미국인들이 널리 알리기 시작한 것.
(민혜련, “관능의 맛, 파리” 참조)

 
양파수프는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음식이다. 5년 전인가, 프랑스에서 처음 먹은 음식이 바로 양파수프.

상경한  촌뜨기 시골처녀처럼 영화 속 장면들을 실제에 하나씩 끼워 맞추며 파리의 면모에 심취했다. 누군들, 첫 파리행이 그렇지 않으랴.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로맨틱해보이기까지 하니 콩깍지가 이런 것이다.

에펠탑 찍고 루브르 박물관 찍고 튈트리 공원 찍고 찍고 또 찍고.


그런데 우박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무심한 하늘,
허기도 슬슬 지기 시작해 보이는 레스토랑 아무데나 들어갔다.

메뉴판에서 내가 아는 프랑스 음식은 양파수프 뿐이었기에 당연한 수순처럼 주문을 했다.
대접 수북하게 찬 그뤼예르 치즈는 넘실넘실, 아주 서양적인 비주얼과 꼬릿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당기기 충분했다. 비를 맞아 물기 가득한 머리카락을 훔치며 훌훌 불어 먹기에 완벽한 식사이기도 했음도 물론.


녹진한 수프의 액체를 흠뻑 흡수해버린 빵덩이는 사실 그 때는 익숙하지 않았다. 물컹,한 식감에 응? 원래 이런건가 싶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구수한 사워도우나 바게트가 들어가지 않은 양파수프는 아니될 말씀이다.
서양인의 장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 그런지, 음식 가리지 않는 나도 많은 양의 양파와 치즈의 혼합물을 한 그릇 다 먹으면 꾸륵꾸륵 속이 약간 꼬인다. 그런데도 오늘처럼 비가 슬슬 오는 쌀쌀한 날에는 양파수프가 먹고싶어지는 것을 보면, 프랑스 살이에 적응을 조금은 했나보다 싶다.


 프랑스에서는 파인 다이닝에서 취급하지 않는 음식이고 모던 프렌치, 퓨전 프렌치가 더 많아지고 있는 근래, 프랑스에서 괜찮은 양파수프를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듯하다. 만들어 먹으려면 오랜 시간에 비례하는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해서 가정에서도 잘 안 한다. 곰탕처럼 뚜껑 덮고 푹 고아내기만 하면 모를까, 양파를 계속 저어주어야 하니 말이다. (적어도 두시간 요리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육수까지 만든다면 세 배 이상이랄까.)오래된 요리책에 남아있는 레시피 요리라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음식, 부디 한 세기 한 세기 버텨 이어나나길.

그래도 달큰하게 복작거리는 양파의 소리를 들으면 긴 요리 과정도 즐길 만하니,

오늘 양파수프 한 뚝배기, 끓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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