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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Nov 26. 2020

너의 단짝

크레이프와 시드르


소주에 삼겹살.

햄버거는 콜라.

맥주와 땅콩, 이던게 오늘은 맥주와 치킨.

단팥빵에 우유 아니 크루아상에 에스프레소, 아니 오늘은 크로플에 플랫화이트.

...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일컬어 '마리아주 mariage'라 한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음식에 쓸 만큼 프랑스인들의 미식 사랑은 특별하다. 섬세한 미각을 요하는 와인인지라 함부로 마리아주라는 용어를 쓰기에 조심스러우니, 짝짓기 '페어링 Paring' 정도로 생각해보자. 사람과 사람을 물론 장르를 불문하고 '단짝'은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문화가 섞이고 섞이면서, 생소한 맛에 노출되는 요즘은 사실 조금 어지럽다. 먹는 방법부터, 어울리는 부식과 음료를 제안해줘야 비로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넘치고 넘치는 음식 포화 상태 세상에서 '친구야', 꼬옥 악수를 할 수 있는 만남은 가짓 수가 많은 만큼 어려워진다.



전형적인 크레이프 식사 모습


프랑스인들이 애정하는 아침식사이자 간식거리, 역사도 꽤 긴 '크레이프'는 오랜 단짝이 있다. 


 곁들이는 새콤달콤한 과일잼, 진득한 견과류잼, 퐁신한 생크림, 사르르 녹는 버터에 흑설탕. 이 부재료는 개인의 취향에 따르면 된다. 달콤한 버전이 오리지널이지만 치즈와 잠봉, 볶은 양파, 달걀 등 식사류로도 먹는다. 파리 곳곳에서 자그마한 가판대 앞 사람들이 있다면 십중팔구 크레이프를 파는 곳이다.

 다양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크레이프를 반으로 찢어 이런저런 조합을 하는 반면, 오로지 버터에 설탕과 시나몬 가루만 솔솔 뿌려 돌돌 말아 다섯 장을 먹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친구는 초콜릿 잼을 얇게 크레이프 구석구석 발라준 다음, 한 번 접고 또 한번 접어 든 다음 크레이프 입을 벌려 생크림을 그득 짜 넣는다. 


 우유와 달걀, 밀가루 세 가지로만 만드는 단순한 크레이프지만 먹는 방법은 이렇듯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고기 쌈을 싸먹을 때와 비교하면 좋은 예시가 되겠다. 나는 상추에 깻잎, 생마늘에 쌈장 구운 고기를 참기름과 소금장에 찍고 파채를 그득 올린 쌈이 제일 좋다. 쌈을 싸는 당신만의 선호가 있으리라. 보통은 자라면서 집에서 먹어온 방법이 개인에게 스며드는 법, 프랑스인들도 어릴 때 먹던 크레이프의 흔적이 오래 간다. 2월 2일은 '크레이프 날Virgin Mary’s Blessing Day '이라고 하여 가족이 둘러 앉아 크레이프 식사를 하는 전통도 있는 나라다.


 크레이프를 해 준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은 뒤 나는 마트에서 애플사이더를 두 병 사가지고 갔다. 두 엄지를 척척 내보이던 친구는 '크레이프와 시드르는 환상의 궁합이지!' 소리쳤다. 파리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노르망디, 브르타뉴 지방이 크레이프의 탄생지인만큼, 노르망디 사과로만 만들어진 애플 사이더와 먹어야 제 맛이란다. 설탕 한 톨 없이 숙성하는 방법으로만 만든다는 자부심 높은 이 프랑스 음료는 톡 쏘는 기포에 신선한 신맛이 기분 좋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레이프와 단짝지어준 것에 의의가 없던 첫 입이다. 


새콤한 시드르를 한 입 머금고 나면 다시 달콤한 크레이프가 한 입 당기고,

이것이 무한반복의 굴레로 빠져든다. 

궁합이 맞는다는 증거다.

서로의 정점을 끌어낼 수 있는 짝을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짝꿍을 알아보는 것은 더욱 섬세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모든 장르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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