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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Dec 06. 2020

11월 셋째 주 목요일 자정

보졸레 누보 와인 Beaujolais Nouveau

겨울이 들어서기 전, 12월 연말을 맞이하기 위한 전야제 같은 행사가 있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 자정, 프랑스 마트에 가면 알록달록한 와인병의 유혹이 시작된다.

고고한 궁서체나 분위기 있는 필기체가 아닌 동글동글 귀여운 글자체에 잔꽃이 잔뜩 그려져 있거나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 빨강 보라 등 명도 높은 화려한 색감의 디자인의 와인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바로, 보졸레 누보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햇와인이다. 매년 9월 초에 수확한 햇포도를 짧게 4~6주간 숙성해 11월 느지막이 출시한다. 가메(Gamay)라는 적포도로 만드는 와인으로, '새로운'이라는 뜻의 '누보' 와인은 싱그러움을 내세우는 만큼, 산뜻한 매력을 무기로 한다.

보졸레 지역에서는  해에  생산된 포도주를 포도주 통에서 바로 부어 마시는 전통이 있었는데,  전통을 지역 축제로 승화시키면서 1951 11 13, 처음으로 보졸레 누보 축제가 개최되었다. 11 셋째  목요일 자정을 보졸레 누보 판매 개시일로 지정한 것은 1985년이다. 그러니까 벌써  세기라는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이어나가는 프랑스인들의  하나의 작은 축제다.(이벤트를 참으로 좋아하는 국민이 아닐  없다.)


어떤 이는 보졸레 누보를 겉절이, 보졸레 숙성 와인은 김장김치라 비교했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해에 수확한 포도에 짧은 숙성을 거친지라 묵직함을 만드는 타닌이 거의 다. 해서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가볍게 마실  있는 것이 보졸레 누보.(숙성한 보졸레는 누보와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가격대도 착하고 디자인도 다양해서 병을 구경하는 재미도 으며, 색감도 연한  여느 레드 와인과 달라 재미난다.

 지인들과 보졸레 누보 와인 시음회를 가졌다. 봉쇄를  번째 하는 프랑스에서 우리는 크게 이상할  없이, 보졸레 누보가 출시된 11 셋째 주 토요일 저녁의 랜선 모임을 열었다. 서로 구매한 와인병을 카메라에 대고 보여주고  모금씩 마셔가며 어떤 느낌인지 감상평을  마디씩 던졌다.  명은 추파춥스가 ! 떠오른다며 아이처럼 주스를 마시듯 홀짝홀짝 금세 잔을 비운다.  친구는 몸이 좋지 않다며 와인은 사놨지만 그냥 이야기만 듣겠다고 접속했는데,     흥미로운  감상을 늘어놓자 기어이 몸을 일으켜 와인을 따버렸다. 상큼한 과일 향에 취한 그녀는 몸살이 절로 낫는  같다더라.


 12월에 들어서서 찾으려고 하면 마트를 몇 군데 돌아야 한다. 그만큼 보졸레 누보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렇게 출시하자마자 불티나게 팔린 배경에는 단지 와인 맛에만 있지 않다. 와인 네고시앙 조르쥐 뒤베프가 역발상으로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 가장 신선한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입힌 마케팅을 성공시킨 사례로 남아, 여태까지 포도 농부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 이에 더불어 출시일까지 공식적으로 정해지니, 한 병 안 사 마시면 큰 잘못이라도 한 듯하다. 마케팅이니 어쩌느니 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 누군들 손을 내저으랴. 출시일을 기다려보니 맛보기 전에  예쁜 와인 병을 들고 벌써 신나는 것도 사실이다.


보졸레 누보를 쟁여놓고 몇 병 즐기다 보면 꽁꽁 싸맨 트리 나무와 프랄린이 가득 든 초콜릿 상자, 밤 졸임 ‘마롱글라세’ 그리고 샴페인 등 크리스마스를 준비할 12월에 다다른다. 가벼운 축제를 즐겼으니 이제 큰 연례행사를 치를 차례. 여느 해와 달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한 테이블에 둘러앉고 싶은 날.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던 나인데도, 이웃집이 밝혀 놓은 작은 등불에 설렘이 인다. 축제라는 이벤트성이 필요한 하나하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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