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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12. 2022

소주랑 바꾸실래요?

샴페인

이 샴페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수 판매로도 부족한 생산량으로 수입하고 싶은 이들이 줄을 서도 못 주는 '희귀 템'이다. 샴페인의 나라에 있다 보니 이런 걸 마셔볼 기회도 있고 말이다. 샴페인이라면 그저 좋은 날 뻥, 하고 마개를 터뜨리고 먹는 기분 좋은 스파클링 와인 정도로만 알던 게 전부지만 말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북동부 상파뉴 지역에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만 오로지 샴페인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이제 꽤 상식이 되었으리라. 이 상파뉴에서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을 채택하여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곳들이 있지만 어쨌든 '샴페인'은 고유명사다. 샴페인을 만드는 생산자만 2만 명, 250여 개의 네고시앙(판매자)이 있다고 하니 샴페인 브랜드를 다 알기도 어렵다. 

 술을 잘 안 하던 나도 파리에서는 격일로 와인을 마시게 될 만큼 와인은 일상적이나 샴페인은 프랑스인들도 매일 마시지 않는다. 가격도 있으니 스파클링이 먹고 싶거나 기분 내고 싶을 땐 다른 지역 스파클링 와인으로 대체하곤 한다. 

 

 며칠 여유가 있던 겨울의 어느 날, 상파뉴에 직접 차를 몰고 가 제조업자 집을 찾아갔다.

정작 직접 샴페인을 생산하는 할아버지는 얼굴 보기가 어렵고 등짝 스매싱을 금방 날릴 것 같은 인상의 부인이 문을 열었다. 문전박대를 한 건 아니지만 달갑지 않은 얼굴로 손님맞이를 한다. 우리는 물건을 사러 온 것이 면죄부라도 사러 온 것 마냥 떨떠름하다.

 같이 간 지인이 버터 발음을 좌르르 굴려대며 모자란 불어로 당신네 샴페인이 얼마나 사고 싶은지 어필한다. 항상 듣는 말인양 끄덕끄덕할 뿐인 할아버지는 부인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부인이 경제권을 가지고 있나 보다.  별로 팔 생각이 없어 보이자, 지인은 유명한 지역 소주 회사가 친구네 소유라고 친구를 팔아가며 프리미엄 증류주를 나중에 들고 오겠다고 해 본다. 화색이 도는 할아버지가 코로나가 아니면 시음하라고 좀 줄텐데 아쉽다는 말을 하시며 너그러운 할아버지같이 구신다. 그제야 본인이 가진 샴페인 라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구매를 해도 가장 낮은 급이 50유로, 두 번째가 75유로쯤이고 가장 높은 급은 150유로를 넘어선다. 마트에서 사려면 15퍼센트는 더 줘야 한다.

 한국에 수출할 생각이 없으시냐, 적은 물량이라도 좋다, 본격적으로는 아니고 은근슬쩍 의중을 떠보았지만 고개를 저으셨다. 일 년에 3천 병이 나올까 말까 한다, 이미 없어서 못 파는 판에 네고시앙이나 수입업자만 배 불리는 수출을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전문 수입업자가 아닌 우리는 하하하, 웃어넘기며 다음에 소주 가져오기로 하고 샴페인을 일단 사기로 한다. 아차, 현금만 받는다. 자동인출기를 찾아 나섰다. 바로 앞에 있다더니, 시골은 시골인가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지인은 더 많이 사려고 욕심부렸다가 한도 초과로 카드가 막혀버렸다. 한국 카드라서 당장 풀지도 못했다. 카드 하나로 최대치를 뽑아 겨우겨우 세 병을 구매했다.


조금 더 쟁여두었다 마셔도 좋았을 아직 어린 샴페인이었지만 먼 길 다녀온 수고와, 

타지살이의 외로움과,

샴페인 본국이라는 점에서 희귀성의 감소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며

뻐엉!

에쁘게 올라오는 기포를 눈으로 귀로 즐겁게 호강하는 날이, 그날이 좋은 날이다.


소주 가지고 할아버지 찾아갈 날이 또 샴페인 마실 그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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