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채식주의자

인도 첸나이

by 파리누나


인도 비행이 나오지 않는 스케줄이 있었나 싶다. 내가 근무할 당시 항공사에서 취항한 인도 도시 노선은 스무 개도 넘었다. 승객이 많은 델리나 뭄바이 비행은 하루에도 서너 번이라 크루들 모두가 공평하게 하나씩은 인도 비행을 가지게 된다. 가장 먼 남부 도시들은 편도가 4시간가량이라 왕복이면 8시간이다. 턴어라운드 비행이라면 갔다 왔다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중간에 하승과 탑승 시간이 최소 두 시간이 추가된다. 턴 비행을 마치고 아침 해가 뜰 때 퇴근하는 날이면 집에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 번은 버스를 잘못 타기도 했고, 맞는 버스 타고도 잠들어 다시 본사에 당도한 적도 있다. (회사 셔틀이라서 잘못 가더라도 다른 숙소를 가거나 본사로 돌아오는 게 다행이었다)


미국이나 캐나다를 오가는 인도 승객들이 절반 이상이기도 해서 짐이 과하게 많은 것도 한 몫한다. 긴 여정 뒤 환승하는 비행이다 보니 목이 마르고 피곤한 승객들, 이는 고스란히 크루들에게 돌아온다. 하여 여러 모로 에러 사항이 많은 노선 이건만 많은 크루들이 인도 도시에서 머무르는 것은 또 선호하지 않는 편. 아무래도 관광을 하기에 최적합한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그렇다. 음식이 안 맞기도 하고 안전 문제도 있고 하니 말이다.

음, 나는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인도 출장을 수십 번도 하신 아버지 덕분에 인도가 낯설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 편도 네 시간 힘들고 하루 호텔에서 자고 오는 스케줄이 왕복 열두 시간 일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좋다. 그래서 가끔 파리, 런던 비행을 인도 레이오버와 맞바꾸기도 했다니까. 하하


첸나이 chennai로 향하는 비행이었다. 첸나이에서 볼거리는 많지 않다 해도 좋은 호텔에서 편하게 자고 내가 좋아하는 인도 음식도 먹고 올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승객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자 마음이 좀 바뀌었다는 건 인정한다. 노란 머리 서양인보다 아무래도 동양인에게 더 친근한 내색을 하는 인도인들이라 나를 보면 딸이나 손녀를 대하듯 그렇게 살가울 수 없다. 그래서 참 오래도 걸리는 인도 탑승 시간에 내내 웃음을 띠고 있으려 한다. 사실 때로는, 지루한 탑승 때 승객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보딩이 마무리되가기도 한다. 빨리빨리 승객들을 ‘앉히고’ 짐칸 문을 ‘닫히게’ 끔 만드는 게 미션이지만 거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느릿느릿한 승객에 짜증만 날 뿐이니까. 마음을 비우고 탑승 시간도 즐겨야 나도 승객도 편하다(회사는 아니겠지만)

그날도 인도 전통복장을 입은 중년의 아주머니들과 같은 데서 구입하나 싶은 두툼한 슬리퍼를 신은 아저씨들이 탑승하며 인사했다.

"welcone onboard, how are you today?"

"Fine, fine. Thank you."

그러던 중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찾기도 전에 다짜고짜 말했다.

"제가 엄격한 채식주의자입니다 주문을 따로 했는데, 확인해줄래요?"

"탑승 완료하는 대로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자리가 어디세요?"

탑승 지연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회사도 기장도 사무장도 승객도, 나도. 조급한 마음을 감추며 애써 웃음으로 자리를 안내한다.


보통 인도인 승객의 70퍼센트는 채식주의자다. 다른 비행과 비교하여 현저히 높은 채식주의자 프로파일이기 때문에 기내식 선택에는 고기식과 채식 두 가지가 실린다. 그러니까 타 비행에서는 채식용이 스페셜 밀, 특수 기내식으로 신청하여 먼저 받아먹게 되지만 인도는 그렇지 않다. 이는 곧, 80퍼센트의 채식주의자가 탑승할 경우 기내식이 부족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주머니가 신경 쓰여 부사무장에게 보고를 했으나, 채식용이 충분하니 걱정 말라는 대답이었다. 그럼, 오케이.

그러나 일이 잘못되려면 항상 이렇다. 굳이, 일찌감치 확인을 부탁한 승객의 기내식이 전달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드라마처럼 꼭 벌어진다니까. 하필이면 그녀는 끄트머리 좌석이었고, 기내 앞쪽부터 시작되는 서비스 상 뒤 쪽으로 가면 선택권이 없어질 수 있다. 역시나, 양고기 카레만 남은 카트를 맞닥뜨린 승객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분명히 채식주의자라고 하지 않았냐,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 나는 탑승 전에도 밥을 못 먹어서 지금 밥 꼭 먹어야 한다, 래퍼를 방불케 한 그녀였다. 승객을 응대한 불운한 크루는(나는 아니었고) 카트를 털털 끌고 들어와 털털 털린 표정으로 다른 크루들에게 채식용 남은 게 없냐고 절박하게 물었다.

“nothing, nowhere…. sorry. 미안 아무 데도 없음…”

어떻게든 넘어가겠거니 했던 부사무장은 그제야 크루용으로 실린 채식 샌드위치와 과일을 쟁반에 담아 “이거라도 가져가” 건넸다. 그 불쌍한 크루는 등 떠밀리듯 기내로 나가자마자 또 한 번 승객에게 타박을 받고 시무룩하게 돌아왔다.

“자기가 이런 cold meal 찬 음식을 먹어야겠냐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예 안 드시겠답니다…”

아이참,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신신당부를 했는데 못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만, 별다른 권한이나 방도가 없는 우리 승무원들은 최대한 승객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할 뿐이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조달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으나 부사무장이나 사무장이 어쩔 수 없이 승낙할 때인데, 사실은 이도 규정에 어긋난다.

어쨌거나 처음에 확인을 부탁받은 게 나였기 때문에 모종의 의무감을 느끼고 내가 나섰다. 뭣도 없는데 말이다. 승무원들을 위해 모든 비행마다 넣어놓는 컨테이너에는 각종 간식이 들어있어 일하는 크루는 누구나 먹어도 된다. 초콜릿바, 핫 초콜릿, 인스턴트 라면과 수프, 시리얼 바 등등인데 나는 종류별로 담아 쟁반을 가득 채워 마치 장전하듯 심기일전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담, 제가 목록에서 분명히 확인을 했습니다만, 만석에 바쁜 나머지 다른 크루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긴 듯합니다. 다시 한번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이것들로도 부족하겠지만, 제가 비즈니스 석에서 제공되는 스낵들을 좀 챙겨 왔습니다. 이 과일은 저희 승무원들에게 지급된 것인데 전부 가져온 것이고요. 따뜻한 커피와 차, 와인과 주스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장시간 비행하시느라 힘드실 테니 조금이라도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비즈니스석에서 가져왔다는 부분만 살짝 과장과 포장한 것이고(비즈니스에도 비슷한 종류의 크루들을 위한 스낵은 있다, 하하), 그럼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나은’ 무언가를 받았다는 느낌과 우리가 노력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인지시켜주는 것이다. 이쯤에서도 화를 낸다면 부사무장이 나서야 할 것이었다.

다행히 상황은 악화되지 않았다. 완전히 기분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져간 쟁반을 그녀가 받아 들기는 했다.

“okay, fine. but make sure i can have it for the next flight back to us. 알겠어요, 하지만 다음에 돌아가는 미국행 때는 반드시 채식 먹게 해줘야 해요.”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천천히 드십시오!”


그녀가 탈 다음 비행을 우리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탈지는 당연히 알 수 없고, 탄다고 해도 기억할지도 보장이 없다. 하여 이런 상황은 ‘비행 리포트’에 상세히 기록하여 다음 비행에 넘기게 된다. 나는 부사무장에게 반드시 메모를 남기라고 ‘please’ 신신당부했다.


인도의 흔한 아침식사, 도사

길지 않은 비행이 촘촘하게도 밀도 있는 네 시간으로 채워져 착륙했다. 호텔로 가는 버스에서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룸서비스 뭘 시키지, 생각하던 찰나에 인도인 크루 둘이 큰 마트에 간다는 얘길 엿들었다.

“나도 갈래!”

현지인과 가는 마트 구경은 언제나 좋으니까, 피곤해도 무조건 함께 가는 편이었다. 특히 혼자 다니기 쉽지 않은 인도에서의 기회는 놓칠 수 없다. 피곤했으면서도, 채식으로 된통 힘 뺐으면서도 나는 식사로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채식 음식을 먹었다.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사 dosa’. 보통 아침식사로 많이 먹는 얇고 바삭한 크레페와 흡사한 음식으로, 쌀과 렌틸콩으로 만든 반죽을 커다랗게 부쳐 안에 내용물을 넣고 세모로 접어준다. 코코넛 처트니, 감자, 야채 소스 같은 스튜를 곁들인다. 코코넛 쳐트니를 가장 좋아하는 나, 다섯 배는 비싼 호텔 룸서비스보다 야무지게 맛있게 해치웠다. 나를 데려간 인도인 크루가 이런 나를 보고 흡족하게 웃는다.

“너처럼 인도 음식 잘 먹는 크루 몇 못 봤다, 크크”

부디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그 아주머니가 맛있는 채식 기내식을 드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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