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빅토리아 케이크는 그래도 달콤해

영국 런던

by 파리누나


런던 비행. 항공사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노선 중 하나다.

영국인들이 카탈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고유한 특성이 있게 마련이라 콕 집어 런던에만 손가락질하면 아니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런던이 잘못이 아니라 대도시를 향하는 노선이 대부분 힘들게 마련. 뉴욕, 파리, 런던이 내가 꼽는 탑 3이고, 인천, 싱가포르, 로스앤젤레스 정도가 뒤를 잇는다. ( 소위 '인스방파'라고 불리는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은 또 다른 차원의 고난도라 이 범주에 넣지 않는다. 99.9퍼센트 만석에 대용량 짐, 다시 쓰지 못할 것 같은 화장실 등)

그러니까 내가 분석해 본 바로는, 대도시인들이 몰리는 곳에는 구체적으로 보면 각기 매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묶이는 요소가 있다. 첫째로 한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없는 다양한 인종과 직업군이 승객이 된다. 이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요구가, 그리고 그 수가 많아질 확률이 자연스레 높아진다. 이를테면, 한국 비행은 컵라면을 월등하게 많이 먹고, 볼펜을 많이 요구한다는 것을 예상하여 이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중국 비행이라면 해바라기 씨를 많이 까먹을 것을 미리 알고 있고, 앞서 언급한 인도는 어느 도시의 인도든 엄청난 짐을 예상한다. 그러나 탑 3 대도시는 그저, 힘드리라, 고만 예상한다.

둘째로 그들은 대부분 도시 생활자들로 예민한 촉이 서 있는 사람들이다. 본디 살고 있는 당사자들은 잘 모른다 자신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관찰자 시점이 되어 기내를 바라보면 확연히 보인다. 조그마한 불편이나 방해를 받으면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표정으로 신경질적이 되는 도시 사람들 말이다. 특히 뉴욕 비행은 비행시간 열두 시간 중 약 백이십 번 정도 'excuse me'를 말하거나 듣게 된다. 언어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는 데 신경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연결하는 세 번째 이유는, 필연적으로 일괄성을 띌 수밖에 없는 기내에서 취향을 찾는다는 점이다. 파리 비행에서는 레드와 화이트 단 두 종류 와인에 딴지를 건다거나ㅡ이코노미에서 말이다ㅡ 여기 런던에서는 우유 없는 커피는 있을 수 없다. 런던 노선에는 그들의 우아한 티타임을 위한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딸기잼 서비스를 따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처음 마주했던 런던의 모습


다 년간 비행을 해도 런던 비행이 스케줄에 나오면 한숨부터 쉬며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다. 뉴욕은 장거리니까 육체적으로 힘든 게 당연한데 일곱 시간 정도의 런던은 실제 비행시간 대비 힘든 느낌이 있다.


많은 런던 비행 중 한 번의 상공에서였다.

화이트 와인을 벌써 나만해도 네다섯 번 가져다 드린 중년 여성 승객이 있었다. 티타임 서비스의 스콘도 거부한 채 와인만 줄기차게 마시던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고 취기가 오른 듯하여 부사무장에게 보고를 하고 동료들과 정보 공유를 해두었다. (승객이 몸을 못 가눌 만큼 취할 때까지 알코올을 서빙하지 않도록 모두가 중요 정보를 인지하도록 한다) 띵동, 콜벨이 또 울리길래 한숨 팍 쉬면서 기내로 가려던 동료를 붙잡고 내가 가겠다고 했다.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와인… 술 좀 더 줘요.”

나는 좌석 옆 복도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희 쪽 갤리에 화이트 와인이 없어서 뒤에서 가지고 올게요. 그런데 실례지만, 무슨 일 있으신가요?"

조금이라도 알코올 서빙을 늦추기 위한 승무원들의 하얀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진상'이려나 싶었다. 긴 비행시간 무제한 와인 마셔보겠다는 건가, 생각했다.

"사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호주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그래서 어머니를 자주 보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셨대요, 어제. 가실 때 옆에도 못 있어드렸어요, 혼자 가신 거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 오랜 비행시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아, 많은 런던 비행 중 하나였으나 이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한 시나리오다.

금방 대답을 할 수 없어 안타까운 탄식만 할 뿐이었다. 말을 시작하자 감정이 솟구쳤는지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고, 주변 승객들이 놀라서 쳐다보고 돌아보았다.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은 깊은 슬픔에 휩싸인 그녀를 안고 가다시피 갤리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울음에 섞여 기내에 흩어졌다. 나는 그런 슬픔을 겪은 적이 아직 없었으나 다 안다는 표정으로 힘껏 고개만 끄덕이면서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를 쓸었다.

술 대신 따뜻한 차와 생수를 앞에 놓으니 자연스럽게 그녀는 컵을 들어 홀짝였다. 조금 진정이 되자 어머니가 생전에 이러하셨다, 저러하셨다 등의 추억과 기억을 꺼내신다. ‘있을 때 잘할 걸’이라는 만국 공통의 마무리로 말이다.

“어머니는 빅토리아 케이크를 가장 좋아하셨죠. 알아요? 스펀지케이크 사이에 딸기잼과 크림을 듬뿍 넣은 영국 케이크 말이에요.”

“네, 알기는 하는데 정작 영국에서는 한 번도 못 먹어봤어요.”

“어머니와 빅토리아 케이크를 두고 티타임을 한 번만 가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녀는 자리로 돌아가 이내 잠이 들었다. 소식을 들은 뒤 한 숨도 잘 수 없었다고 했는데, 지쳐 쓰러져 잠든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지만 다행이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레이오버 중 나간 런던 시내 구석에서 열린 자그마한 시장에 그 케이크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부담스럽지 않게 작은 크기로 구워내 입자가 큰 설탕을 입고 다소곳이 나를 기다리던 빅토리아 케이크. 그 비행을 마치고 어찌 이것을 안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을 먹으러 런던에 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아는 맛이지만 동시에 알지 못했던 감정이 벤 소박한 디저트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녀도 여전히 빅토리아 케이크는 달콤하다고 여길까.


keyword
이전 06화#06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