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
아직 추운 겨울, 일요일 아침의 바르셀로나.
운동화를 미처 가져오지 않은 나는 아주 편한 복장에 슬리퍼를 질질 끈 채 카페로 향했다.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스페인, 9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거리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9시에 문을 연다고 적혀있는 카페 앞에서 추운 발을 총총거리며 기다렸다.
한 남자가 다가와 오픈 시간을 들여다봤다.
스페인어로 뭐라고 물어보길래, 'Sorry, I'm not..."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 조금만 기다리면 되네요" 곧바로 영어로 고쳐서 대답해준다.
그렇게 어색한 십 초가 흘러서,
나는 스페인인이냐고 물었더니 독일인이란다.
여기서 스페인 아침식사를 할 수 있냐고 내가 물었다.
조금 생각하더니 그는 스페인식보다는 그냥 프렌치 베이커리에 가깝다며, 한 골목 내려가면 괜찮은 곳이 있단다.
길을 알려주다가 오픈 시간도 조금 있으니 라며 직접 나를 이끌었다. 가봤더니 거기는 10시에 연단다.
할 수 없이 도로 원래의 카페로 왔더니 오픈한 카페, 이미 한 손님이 들어가 있다.
카페로 들어섰는데 나는 혼자 앉아야 하나,
아까보다 더 어색해져 버린 순간에 멈칫했다.
그런 나를 알아차렸는지 스페인 식사 가능한지 물어보겠다며 그는 같이 앉자고 한다.
그리고 유창한 스페인어로 점원과 이야기를 한다.
다행히도 저 아래 가게에서 먹으려고 했던 메뉴가 있다며 대신 주문을 해 준 친절함.
항상 이 카페에서 이 카푸치노를 마신다고 한다.
수프 컵 같은 큼직한 잔에 가득한 카푸치노 거품에 추위가 사르르 녹는 기분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올리브 오일을 원하는 만큼 갓 구운 빵에 마구 뿌린 뒤
신선한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쓰윽, 발라내
얇게 저민 돼지고기 하몽을 올려 먹으면 된다. 능숙하게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해준다.
그는 글을 쓴다고 했다.
사실 며칠 전에 소설 하나를 끝냈다며, 곧 출판을 할 수 있을 거란다.
"내가 읽을 수 있을까 나중에? 아, 독일어로 쓴 거 아니야?"
"영어로 썼으니까 기회 되면 읽을 수도 있어, 출판만 잘 된다면.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독일인이 스페인어,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한다니 그냥 동네 아저씨가 아니란 말이지.
"원래 귀가 좀 밝아" 라며 겸손해한다. 언어를 잘하는 칭찬에 귀가 밝은 것이라고 대답하는 건 예상치 못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큰 회사의 이사장이었단다.
돈은 남부럽지 않게 벌었지만, 삶이 없었다고.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 아이들을 성장하는 순간순간을 놓쳤고 부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물론,
결국 이혼에 이르렀단다.
뒤늦게 크게 잘못됐음을 느끼고 모든 것을 내려놨다. 그리고
언제나 하고 싶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건 무슨,
전형적인 드라마 같잖아.
다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들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 보니 없어도 다 살 수 있더란다.
아니 더, 잘 살고 있단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정말 담담하면서 편안해 보였다.
"It's Important to find a right way to live"
-옳은 방법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 거지.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내가 비행을 하게 된 이야기도 하였으나,
살아온 세월이 꽤 차이가 나서인지 내가 하는 얘기는 참 내 귀에도 단순하게 들렸다.
낯선 이와의 한 시간 가량 아침식사는
한적했던 거리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나눈 것에 불과했으나, 신선했다.
24시간 마드리드에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시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처음 보는 승객들과 함께 하는 비행이지만 대화를 나눌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그의 책을 서점에서 발견한다면 꼭 구입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식사를 끝냈다. 내가 그의 독자가 되고 그가 나의 승객이 된다고 해도 못 알아차릴 만큼 짧은 만남, 그렇다고 의미 없는 식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