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길을 잃었나요?”
내게 건넨 말이 맞나 싶어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만큼 커다란 카메라를 든 머리 희끗한 분이 서 계셨다.
독일 뮌헨,
바람이 차갑던 겨울의 한 날이었다.
여행자에 걸맞게 나는 그저 낯선 풍경에 녹아들고자 걷고 있었던 것인데,
길 잃은 아이 같았나 보다.
"아뇨 그냥, 뮌헨이 처음이라서 천천히 둘러보는 중이었어요. 같은 거리를 몇 번 걸어도 제게는 계속 달라 보이거든요. 혹시, 갈 만한 데가 있나요?"
여느 유럽 도시 스테이와 같이 레이오버 시간은 딱 하루, 24시간가량이다. 그런 사정은 생략하고 내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씀드렸더니, 눈을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다. 의미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임을.
우리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온 사진작가 피에르는 곧 뮌헨에서 열리는 큰 콘퍼런스 참가자로 들렀다고 했다.
독일어를 방언까지 알아들을 만큼 하신다면서도 원어민은 아니라고 겸손을 떠신다.
40년 평생 사진을 찍어온 세월을 증명하듯, 그는 세상 많은 곳들에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집 마당처럼 능숙하게 뮌헨 골목 사이사이를 걸으며 그는 재미난 책을 읽어주듯 도시에 남아있는 역사를 들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아름다운 건물들과 좋은 레스토랑들, 가게들의 면모를 잠시 마나 만끽했다.
“초면에 식사를 같이 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커피 한 잔은 적당히 좋지 않을까요?”
나는 웃으며 동의했다.
뮌헨에 올 때마다 가는 카페가 있다며 나를 이끈 곳은 카페 같기도 하고 바 같기도 했다. 내가 참 이방인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동네 사람들로만 가득 찬 장소였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한다. 커피를 기다리다가 내가 신고 있던 신발을 보고 춥지 않냐고 물으셨다.
앗, 들켰다.
사실은 내 첫 스탠바이 비행이었다. 승무원으로 일한 첫 달, 트레이닝을 마치고 세 개쯤 비행을 한 상태였는데 대기 중 갑작스럽게 투입된 뮌헨 비행. 나는 레이오버 동안 신을 신발을 가져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가보는 뮌헨, 꼭 호텔에서 나가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기내화를 신고 나간 참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동료를 만날까 싶어 도망가듯 거의 뛰어나간 외출이었다.
그 사정을 이야기하며 쑥스럽게 웃었더니, 신발은 잘못 가져왔어도 제대로 된 동행인을 만나지 않았냐며 너스레를 떠신다. 남자는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어쩜 그리 비슷한 레퍼토리를 읊을 수 있는가, 나는 속으로 웃었다.
한창 새로운 곳을 다니다 보니 카메라가 욕심나던 때였다. 찍은 사진을 좀 봐도 되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카메라를 넘겨주셨다.
"It takes a lot of time to realize what you see"
-지금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정말로 무엇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란다.
지나가는 말처럼 하신 그의 한 마디가 그가 보여준 많은 것들보다도 가슴에 오래 남았다.
어디에 간다고 무엇을 본다고 누군가를 만났다고,
그 순간 다 알 수는 없다고, 시간이, 때로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간이 가도 중요한 그 무엇을 모르고 지나간다면 어쩌죠,
뒤늦게 여쭈고 싶었다.
당신처럼 오랜 세월을 보내면 다 알게 되나요?
속으로 질문을 삼키며 함께 카페를 나섰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나는 독일 하면 프레첼이 떠올라 프레첼 맛있는 집은 어딜까요, 또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깊이 생각하다가,
"뮌헨에 프레첼 잘하는 집 없는데?"
하시더니 장터의 한 상인에게 물어보더란다. 그러더니 근처 상인과 손님이 여럿 모이기 시작했다.
어랏, 일이 커지네.
'회의'를 거친 그들의 결론은 뮌헨에는 프레첼 맛집은 없다,였다. 하하.
그나마 저기 저 집이 괜찮다고 해서 나는 동전을 다 그러모아 두어 개 골랐다. 할아버지랑 벤치에 앉아 프레첼을 뜯어먹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프레첼은 차갑고 그저 그런 맛에 불과했지만, 피에르가 준 반나절은 결코 그저 그렇지 않았다.
이후 수도 없이 많이 하게 된 뮌헨 비행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가 알려준 곳들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