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아크라
비행 시작 후 처음으로 받은 아프리카 행선지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 가나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을까. 가나 초콜릿? 대개 도시 이름이 익숙한 유럽과 달리 아프리카는 나라 이름으로 불리어도 낯설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유럽 땅에 처음 간 지 한 달도 안 되어 가보는 또 다른 새로운 대륙. 상상이 안 되는데서 오는 기대감과 안전이 조금 우려스러운 사실에 불안함도 함께 가지고 이륙했다.
승객의 99퍼센트가 아프리카 사람인 것부터 익숙하지 않던 만석인 비행. 평균 체격이 아시아인들의 일점 오 배은 되기 때문에 손바닥 만한 기내식 하나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양이다. 밀 서비스가 3시간을 넘었다. 탄산음료도 동이 났다. 밀 서비스가 오래 걸린 만큼 화장실 체크할 시간도 밀렸다. 화장지나 변기 커버 등 어메너티가 다 떨어졌음에 틀림없었다.
가끔씩 화장실이 잠겨있는데도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기내 화장실 특성상 밖에서 잠금 장치를 껐다켤 수 있다. 문이 잠긴 화장실 앞에서 위생장갑을 낀 채 5분가량 밖에서 대기했는데 아무 소리가 없다.
똑똑똑.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안에 누구 있어요?"
문에 대고 말을 하면서 다시 한번 두드렸다.
그래도 대답이 없길래 다른 크루가 잠가 놓았나 싶어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서 일을 보고 계셨다.
나는 거의 슈퍼주니어 'sorry, sorry' 노래를 하듯이 연거푸 사과를 하면서 문을 황급히 닫았다. 밖에서 잠금으로 되돌려놓고 도망치듯 갤리로 돌아왔다. 다른 크루에게 방금 이러이러해서 이랬다, 어떡해?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일단은 조용히 지나간 듯했다.
삼십 분이나 흘렀을까, 내가 일을 털어놓았던 크루가 나를 찾았다.
아까 그 승객이 나를 찾는다고,
엄청 화 나 보이던데?
그 한 마디까지 덧붙이며 전달하는 게 얄미울 정도였다.
마음을 다잡고 아주머니가 계신 자리를 찾았다. 상공에 있는 한 숨는다고 숨을 곳이 있는 게 아니기에, 대면해야 하고 빨리할수록 좋다. 그리고 더 불만을 듣기 전에 사과를 빠르게 하는 편이 좋다.
"마담, 아까는 정말 정말 죄송했어요. 노크를 했는데 비행기 소음 때문에 못 들으셨나 봐요, 어찌 됐건 제가 더 기다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
쏟아내는 내 사과에 붉었던 아주머니 얼굴이 조금 사그라드는 게 보였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 줄 알아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요. 아무튼 알겠어요, 다음에 주의해줘요."
"네, 그럼요. 절대 수치심을 주고자 문을 연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따로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
프로페셔널하게 처리를 하고 돌아왔다는 듯 쿨하게 갤리에서 동료들에게 '어, 괜찮아. 아무 일 없어!'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되게 긴장했다. 더 언성을 높일까 봐 혹시라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될까 봐 겁 잔뜩이었던 게 진짜였지.
그렇게 정신없는 비행이 끝나고 호텔로 가니 힘이 빠졌다. 야외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식 호텔로 배정된 아크라에서 대부분의 크루들은 여유롭게 뷔페를 먹고 물놀이를 한다. 일단 피곤했던 몸을 좀 뉘었다가, 나는 초콜릿을 사러 나섰다. 가나 초콜릿을 먹고 힘내야겠다는 이상한 의지였다.
동양 여자애가 혼자 아크라 길에 나서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과일 파는 아줌마도 고기를 파는 아저씨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가나 초콜릿을 사고 싶다고 물어보면 날 정말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마트 위치만 물어서 찾았다. 와, 진짜 가나 초콜릿이라고 쓰여 있는 게 있다니까?
롯데제과가 초콜릿 시장에 뛰어든 것은 1974년 9월. 아프리카 가나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코코아 원료를 수입할 수 있다고 하여, 롯데제과는 영등포에 초콜릿 공장을 짓기로 하고 연구에 돌입했다. 1975년 2월 ‘마이크로 그라인드’ 공법을 통한 초콜릿 제조에 성공해. 롯데제과는 원료 수입국인 아프리카 가나의 이름을 딴 ‘가나쵸코렡’(당시 초콜릿 표기는 초콜레토)을 처음 시장에 선보였다.
(출처 : 식품 음료 신문(http://www.thinkfood.co.kr))
그러니까 그 가나가 진짜 이 가나였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가나에서 먹은 초콜릿은 가나 쵸코렡 맛이 아니다.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5개쯤 사 왔는데 아무도 주지 못하고 나도 다 못 먹을 싸구려 초콜릿 맛이었다. 달콤함 없는 씁쓸함의 첫 아프리카.
분명 가나에도 맛있는 것이 있을 것, 내가 못 찾았다고 없는 게 아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