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신세라니, 반찬이 메인이 되리

도라지 오이&시래기 무침&멸치 꽈리고추볶음&월과채

by 파리누나

엄마 일 나가시지 않는 날은,

또 하루의 엄마 일하시는 날이다.

냉장고와 창고 정리, 베란다와 화장실 청소, 미뤄놓은 이불빨래, 화분 가꾸기 그리고 밑반찬 만들기 등등.

겨우 하루 이틀 쉬는 날을 엉덩이 붙일새 없이 오히려 집에서 더 바쁘게 보내신다.

우리 엄마는 본인이 다 하셔야 마음 편한 구식 엄마.

조금만 쉬셨으면 좋겠는데, 뭐라 못하겠는 게 나도 엄마의 그런 면을 닮았다.


몇 주나 전에 다녀온 외가에서 가져온 농수산물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오늘은 밑반찬을 꼭 다 만들어놓으셔야겠단다.

청소는 못하는 나지만 요리는 거들 수 있으니 나도 앞치마 둘러본다.




반찬은 그저 우리 상 위에 올라오는 것들이려니,

나조차도 '반찬 신세' 몰라줬던 거 인정한다.

게다가 워낙 반찬을 많이 두고 먹는 우리 집이라ㅡ우리 집 놀러 오는 친구들은 항상 반찬 수만 봐도 놀라곤 했다 그 소중함을 인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 들여 찬을 만드시는 모습을 가까이 보니,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이제는 그 맛이 다르다.


혼자 지낼 때는 보통 한 그릇 식사로 만들어 먹고는 해서 반찬은 김치면 족했다.

혼밥 혹은, 같이 먹을 때도 본인이 먹고 싶은걸 따로따로 주문하는 외국생활에 익숙해져있었나 보다.

반찬을 많이 두고 먹는 게 효율성이 없어 보였달까,

만드는 것도 끼니마다 내는 것도, 설거지 나오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한국 들어오니 역시 우리나라는 반찬의 민족.

아닌 게 아니라 상가나 시장의 반찬가게들이 장사가 꽤 잘 된다.

반찬이 없으면 상차림이 허전해지기 쉬운 게 우리네 밥상인 게 맞다.

효율성의 문제라기보다 역시 음식은 문화의 문제다.

조금씩 달리 만드는 재미, 다양한 재료를 섭취하는 방법, 그리고 공유하며 먹는 전통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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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하나씩 벗겨 오이와 무친 생도라지.

도라지 향이 이렇게 깊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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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없이 기른 꽈리고추, 멸치볶음인지 꽈리고추볶음인지 모를 만큼 많이 넣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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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은 통깨 팍팍 넣어주면 반지르르한 때깔이 더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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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조물 기본 간만 한 시래기는 반찬으로 먹어도 비벼먹어도 좋다.

된장 풀면 시래기 된장국도 되니 이만한 풀 데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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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월과채.

눈썹 모양으로 썬 애호박을 소고기와 표고버섯 볶은 것을 섞어주는 감칠맛 나는 찬이다.

본래 찹쌀로 납작하게 지져내는 '찰 전병'을 넣어주는 게 정석인데 고것은 편의상 빼도록 하자.


KakaoTalk_20191010_011936328_23.jpg 오늘의 반찬 모음, 사총사!


여기에 김치 두 어가지만 곁들여 상 차리면 메인 요리 하나 없어도 넉넉하다.

적당히 달고 짜고 맵고 쓴 모든 맛이 들어있는 우리 반찬들이니,

'반찬 신세'라는 말은 무례하게 들린다.


반찬이 메인이 되는 '반역'의 상차림이 때로는 속이 편한 '반란'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반찬은 콩자반과 진미채 볶음이었다.

그저 달짝지근한 것만 좋아했겠지.

입맛이 변해서 이젠 심심하게 식재료들이 맛을 내는 것들이 좋지만

내일은 진미채를 조금 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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