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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27. 2019

반찬 신세라니, 반찬이 메인이 되리

도라지 오이&시래기 무침&멸치 꽈리고추볶음&월과채

엄마 일 나가시지 않는 날은,

또 하루의 엄마 일하시는 날이다.

냉장고와 창고 정리, 베란다와 화장실 청소, 미뤄놓은 이불빨래, 화분 가꾸기 그리고 밑반찬 만들기 등등.

겨우 하루 이틀 쉬는 날을 엉덩이 붙일새 없이 오히려 집에서 더 바쁘게 보내신다.

우리 엄마는 본인이 다 하셔야 마음 편한 구식 엄마.

조금만 쉬셨으면 좋겠는데, 뭐라 못하겠는 게 나도 엄마의 그런 면을 닮았다.


몇 주나 전에 다녀온 외가에서 가져온 농수산물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오늘은 밑반찬을 꼭 다 만들어놓으셔야겠단다.

청소는 못하는 나지만 요리는 거들 수 있으니 나도 앞치마 둘러본다.




반찬은 그저 우리 상 위에 올라오는 것들이려니,

나조차도 '반찬 신세' 몰라줬던 거 인정한다.

게다가 워낙 반찬을 많이 두고 먹는 우리 집이라ㅡ우리 집 놀러 오는 친구들은 항상 반찬 수만 봐도 놀라곤 했다 그 소중함을 인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 들여 찬을 만드시는 모습을 가까이 보니,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이제는 그 맛이 다르다.


혼자 지낼 때는 보통 한 그릇 식사로 만들어 먹고는 해서 반찬은 김치면 족했다.

혼밥 혹은, 같이 먹을 때도 본인이 먹고 싶은걸 따로따로 주문하는 외국생활에 익숙해져있었나 보다.

반찬을 많이 두고 먹는 게 효율성이 없어 보였달까,

만드는 것도 끼니마다 내는 것도, 설거지 나오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한국 들어오니 역시 우리나라는 반찬의 민족.

아닌 게 아니라 상가나 시장의 반찬가게들이 장사가 꽤 잘 된다.

반찬이 없으면 상차림이 허전해지기 쉬운 게 우리네 밥상인 게 맞다.

효율성의 문제라기보다 역시 음식은 문화의 문제다.

조금씩 달리 만드는 재미, 다양한 재료를 섭취하는 방법, 그리고 공유하며 먹는 전통이 그러하다.


껍질 하나씩 벗겨 오이와 무친 생도라지.

도라지 향이 이렇게 깊었던가 싶다.

농약 없이 기른 꽈리고추, 멸치볶음인지 꽈리고추볶음인지 모를 만큼 많이 넣은 고추.

볶은 통깨 팍팍 넣어주면 반지르르한 때깔이 더 살아난다,

조물조물 기본 간만 한 시래기는 반찬으로 먹어도 비벼먹어도 좋다.

된장 풀면 시래기 된장국도 되니 이만한 풀 데기도 없다,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월과채.

눈썹 모양으로 썬 애호박을 소고기와 표고버섯 볶은 것을 섞어주는 감칠맛 나는 찬이다.

본래 찹쌀로 납작하게 지져내는 '찰 전병'을 넣어주는 게 정석인데 고것은 편의상 빼도록 하자.


오늘의 반찬 모음, 사총사!


여기에 김치 두 어가지만 곁들여 상 차리면 메인 요리 하나 없어도 넉넉하다.

적당히 달고 짜고 맵고 쓴 모든 맛이 들어있는 우리 반찬들이니,

'반찬 신세'라는 말은 무례하게 들린다.


반찬이 메인이 되는 '반역'의 상차림이 때로는 속이 편한 '반란'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반찬은 콩자반과 진미채 볶음이었다.

그저 달짝지근한 것만 좋아했겠지.

입맛이 변해서 이젠 심심하게 식재료들이 맛을 내는 것들이 좋지만

내일은 진미채를 조금 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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