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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Nov 08. 2019

어설퍼도 작은 마음 알아주는 사람

꿀 바른 매작과

어느새 6년도 넘은 인연의 친한 언니의 생일이었다.

같이 일하다가 둘 다 이직한 후로는 계속 떨어져 지낸 터라 서로 생일은 메시지 보내주는 정도.

아, 작년에는 언니가 축하 동영상이라며 노래를 불러 내 생일에 보내줬다.

두바이에서 홀로 보내던 생일날 그 영상을 열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올해는 언니가 본인 생일 때 휴가를 한국에 왔다.

쓸 수 있는 휴가가 있는 김에 생일 때로 맞춘 건 한 명이라도 같이 생일을 보내고 싶어서였을 것.

생일 챙길 나이 아니라고 해도 타지의 외로움은,

그래도 외롭더라.


언니 만나러 가기 전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생강즙을 만들고 반죽을 했다.

몇 번 안 해본 거라 나조차도 반신반의하며 만든 터라, 이런 거 줘도 되나 싶긴 했다.

그냥 가는 길에 화장품이나 주얼리를 사는 게 나은 건가, 싶으면서.




매작과다.

외국은 충분히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 한국의 뭔가를 해주고 싶기도 하고

컵케이크라도 하려니 오븐이 없다.

그러다 찾은 레시피는, 앙증맞은 매듭이 고운 매작과.


하나하나 정성 들여 꼬아주며 모양 잘 나오라고 마법 걸기.

카모메 식당에서 루왁커피를 내릴 때처럼 말이다.


타지 않도록 조금 낮은 온도에서 골고루 튀겨주기.

아직 튀김 종류는 자신이 없는데,

또 마법을 걸어본다.

치지직,

기름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기분을 끌어올려준다.

튀기면서 모양이 살짝 변하기는 했지만, 기포도 살짝 올라오고.

그래도 색은 나름 고르게 난 것 같다.

키친타월에 한 번 기름기를 빼면서 식혀주고 나서

원래 설탕시럽을 하나씩 담가주는 레시피이지만,

양봉하는 집 손녀다 난.

할아버지가 딴 아카시아 꿀로 범벅해준다.


꿀맛.

잣가루가 없어서 검은깨를 살짝 뿌려줬는데, 나쁘지 않다.

포장이 좀 더 고급스럽지 못해 아쉬울 뿐.

정성은 들였지만 어설픔이 어쩔 수 없이 스며있다.

ㅡ모양 틀로 찍어낸 곰돌이도 숨어있다ㅡ


들고 가면서도, 건네주면서도 조금 머쓱하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언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니 더 민망해지는데,

받는 사람이 정성을 알아주니 내가 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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